[BOOK] 1만 4000km 3년 걸어 만난 아프리카의 맨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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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오로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에서 이스라엘 티베리아 호수까지 1만4000㎞를 3년간 걸어낸 프랑스 출신의 푸생 부부. 능선을 걷는 그들의 걸음걸음에선 여유가 묻어난다. [푸르메 제공]

아프리카 트렉
 알렉상드르 푸생·소냐 푸생 지음
백선희 옮김, 푸르메
568쪽, 2만2000원

 경험은 꾸미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다. 몸으로 겪은 경험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3년간 두 발로 아프리카 대륙을 걸어 이스라엘 티베리아 호수까지 1만4000㎞를 걸어간 이 프랑스 부부의 이야기가 그랬다. (책은 킬리만자로 정상에 이르는 7000㎞의 여정만 담았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만나려고 걸었다. 최종 목적지만 있을 뿐,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서 머물지 계획은 없었다. 여행이 끝나는 날? 그런 것도 없었다. 원칙은 있었다. 모든 후원을 거부했고 자동차를 태워주겠다는 요청은 단호히 거절하며(가끔 호의 넘치는 초청자가 ‘강제 납치’ 하는 순간에는 걷기가 끝난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 도보를 시작한다) 경비는 여행 내내 쓴 글과 찍은 사진을 팔아 충당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이 부부, ‘아프리카 종단 무전취식 부부’임을 만방에 떠들고 다닌다.

부부의 대장정은 2001년 첫날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에서 시작된다. 그들을 만난 사람들의 첫 반응은 한결같았다. “걸어서 예루살렘까지?” 살인과 강간 등이 횡행하는 흉흉한 동네들을 지나겠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이내 그들의 구세주가 돼 밥도 주고 잠도 재워준다. 배낭도 빵빵하게 채워주고 후방 보급 부대 역할도 자임한다.

그들은 매일 저녁 우연한 만남이 이끄는 대로 갔다. 길이 그들의 걸음을 인도했고, 운명을 이끌었다고 기억한다. 지은이는 “우리의 다리는 자만심이나 의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인의 순박하고 자연스런 환대 덕에 나갈 수 있었다”며 “만약 이 겸허한 연대의 끈이 없다면 우리는 단 이틀도 걷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몸의 고통이 더해가도 이들은 깨닫는다.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놀라운 문을 열어주며 가난한 도보여행자가 된 뒤 그들의 삶이 풍요로워졌음을.

사람에 대한 믿음 하나로 용감 무쌍하게 장정에 나선 이들은 나침반도 GPS도 없었지만 길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길은 반드시 어딘가로 통하게 되어 있으며, 인간은 노력을 적게 하려고 애쓴다는 것. 결론,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다. 주마간산식으로 훑은 아프리카 관찰기가 아닌 온몸으로 느낀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감을 보태주고, 이들이 거쳐간 지역을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도 자주 동한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들의 여정이 부러우면서도 “나는 못해”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남편인 알렉상드르가 “그녀의 심장이 나의 나침반이었다”고 묘사한 구절을 읽으면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넘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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