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지방경제]2.공단이 비어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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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도대체 공장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 광주시 인근에 있는 평동 외국인 전용공단 (19만평) 을 찾아가 본 사람들은 휑한 들판 위에 군데군데 삽질을 하다만 흔적을 지켜보며 한동안 말을 잃는다.

지난 95년부터 외국기업 국내 유치를 위해 임대료가 거의 공짜 (한달 평당 1백32원) 나 다름없지만 현재 가동 중인 업체는 겨우 1개사뿐이다.

분양률을 따져보는 것조차 무의미한 일이다.

이처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백억, 수천억원씩을 들여 조성한 국가공단과 지방공단이 수년째 텅텅 빈 채로 방치되고 있다.

공단 (工團) 이 말 그대로 '공단 (空團)' 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IMF 관리체제 이후에는 입주계약을 체결한 업체들마저 중도금을 연체하거나 입주를 연기, 또는 해약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산하 국가단지의 분양실태를 조사한 결과 (97년말 현재) 미분양 면적은 전체 조성면적 (1억5천6백81만5천㎡) 의 19% (2천9백76만6천㎡)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20개 단지 중 완전 분양된 곳은 구로.남동.부평.주안.반월 등 수도권 5개 공단에 불과하고 지방소재 공단들은 모두 미분양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토지공사가 7천억원을 투자해 올해말 완공을 목표로 조성 중인 부산 녹산공단 (1백45만평) 의 입주업체는 고작 5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노태우 (盧泰愚) 정부 시절 '서해안 경제권시대의 개막' 이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4백만평에 걸쳐 방대하게 조성된 전남 영암의 대불공단은 91년부터 분양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24%만 분양됐을 뿐이다.

신규 조성 공단은 더 큰 어려움에 부닥치고 있다.

2백만평을 신규 조성할 예정이었던 여천석유화학단지 확장사업의 경우 입주대상 기업의 90%가 이전계획을 유보했다.

8백만평을 목표로 조성 예정이었던 율촌지방산업단지도 현재 3분의1 정도만 매립된 상황에서 공사가 중단돼 2, 3단계 공사는 언제 진행될지 모르는 상태다.

벤처기업 등 첨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광주지역에 조성한 광주첨단산업단지도 사정은 마찬가지. 입주업체는 아남산업.삼성전자 등 대기업 공장 두 군데뿐이다.

기업들이 이처럼 지방공단을 외면하는 것은 주변의 사회간접자본시설이 워낙 미비한데다 주 소비자층이 몰려있는 수도권까지의 물류비용이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광주지역의 수출기업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양.목포항이 있지만 컨테이너 선적시설 등이 완비되지 않아 멀리 마산.부산항까지 찾아가고 있다.

정치적 구호와 목표만을 내세워 '테이프 커팅' 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앞뒤를 충분히 돌아보지 못한 것이다.

대불공단 내 철골구조물 생산업체 D기업의 K사장은 "대규모 단지여서 물류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 예상하고 96년 입주했는데 판단착오였다" 며 "항만.철도 등 기반시설이 제대로 돼있지 않아 하루 빨리 공장을 처분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다" 고 말했다.

일관성을 잃은 산업정책도 지방공단의 공동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도권지역의 공장입지 제한을 풀었다 죄었다 하는 바람에 지방공장을 계획했던 기업들이 다시 서울 근교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장차 한국의 실리콘 밸리로 꼽혔던 청주 오창과학산업단지의 경우 최근 정부가 반도체공장의 수도권 입주를 완화할 조짐을 보이자 4개 업체가 서울지역에 공장을 세우겠다며 입주를 포기했다.

입주가 끝난 기존 공단들도 몸살을 앓고 있다.

70~80년대 수출을 주도해왔던 창원공단의 경우 입주업체들의 가동률이 지난해 11월 82.2%에서 12월 80.1%, 올 1월에는 74.5%로 급락했다.

경기도 어렵지만 휴.폐업 업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남동공단의 가동률은 지난해 11월 72.7%에서 12월 70.4%, 올 1월 67.5%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지방공단 활성화가 필수적이며 무엇보다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일관성 있는 지원정책이 아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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