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혁 인도네시아의 선택]후계자 하비비 앞길 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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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인도네시아 국민협의회는 10일 수하르토 현 대통령과 바차루딘 하비비 (61) 과학기술장관을 5년 임기의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각각 선출한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일곱번째 연임을 보장받고 하비비 장관은 노령의 수하르토 (76) 의 후계자 위치를 확보하게 됐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가는 벌써부터 하비비 시대의 개막을 점치고 있다.

하비비가 주도하는 대규모 개혁도 예상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국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하비비 시대를 전망해본다.

67년 수하르토 대통령 취임 이래 여섯번에 걸친 대통령선거에서 부통령은 항상 실권없는 형식적 자리에 불과했다.

절대군주에 버금가는 수하르토 1인통치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곁가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76세의 고령인 수하르토 대통령이 후계구도를 염두에 두고 선택한 부통령이기 때문이다.

하비비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협의회 승인이 확실시되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국가개혁안을 살펴보면 하비비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우선 현재 4개 부처의 장관이 관장하던 재정.생산.분배 등 경제분야와 정치.안보.복지분야가 모두 부통령 감독아래 들어가도록 돼 있다.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조타수 역할이 부여된 것이다.

하비비의 아킬레스건인 군과의 갈등도 거의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93년 하비비의 부통령 지명을 막았던 군부는 이제는 그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미 90년 국내 이슬람교도 저명인사 협회장에 하비비를 임명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포석을 구체화했다.

전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이슬람교도의 지지를 발판으로 정치기반을 키우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탄탄해 보이는 권력승계 구도에도 불구하고 하비비의 앞날을 가로막고 나설 장애물 역시 적지 않다.

파탄 직전에 있는 경제가 첫번째 시험대다.

지난해 7월 루피아화 폭락으로 시작된 경제위기는 민간부문의 경우 거의 모라토리엄 (지불유예) 상황으로까지 접어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정환율제인 통화위원회제도 (currency board system)에 대해 국제 채권은행들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으며 국제통화기금 (IMF) 은 구제금융지원 중단 가능성마저 경고했다.

하비비의 가족.친지가 경영에 관여하는 83개 기업은 새로운 부패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예컨대 국가 군 전략사업에 필요한 핵심부품을 자신의 가족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조달토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전형적인 족벌경제의 폐단이라는 지적이다.

하비비가 1천여 기업의 경영에 손을 뻗고 있는 수하르토 대통령 족벌의 전횡을 그대로 답습할 경우 그가 주도하는 각종 개혁에 국민이 공감할지 의문이다.

국고낭비를 일삼는데다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일부의 비판도 큰 부담이다.

그는 국가전략산업인 조선과 자동차.항공기제작사업을 추진하면서 수백억달러의 외화를 낭비, 결과적으로 경제위기의 한 요인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독일 공학박사 출신으로 13세때 수하르토를 만나 수하르토의 분신으로까지 불리는 하비비는 "국가개혁으로 경제위기 극복은 가능하다" 고 자신하고 있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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