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부동산 개발에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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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서울 동대문의 R상가. 이 쇼핑몰은 2년 전부터 사업을 추진했으나 지난해 굿모닝시티 사건으로 사업이 벽에 부닥쳤다. 땅을 100% 매입해야 인허가가 나도록 규정이 바뀌자 은행도 자금 투입을 꺼렸고 시공사도 정해지지 않았다.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때 외국투자회사인 L사가 660억원을 집어넣었다. L투자회사 관계자는 "돈만 대면 사업이 잘 진행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위험을 안고 들어갔다"고 말했다. 인허가 절차가 모두 끝난 이 상가는 다음달 중 분양에 나선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빌딩 등 자산 투자에 주력했던 외국계 투자회사가 이처럼 부동산개발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특히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현재 프로젝트 파이낸싱(사업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택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L사는 외국업체 중 가장 먼저 주택개발사업에 손댔다. 지난해 서울 성북구 성북동 단독.빌라사업과 잠원동 빌라사업에 땅값과 공사비를 투입하는 조건으로 참여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5건의 개발사업에 손을 댔다. 사업을 검토한 뒤 수익이 생긴다는 확신이 서면 자금을 대는 방식이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은행이 통상 시공사의 신용을 담보로 잡고 분양 계약금과 중도금을 우선적으로 회수하는 조건으로 땅값을 대주는 '이자 따먹기'라면 외국투자회사는 담보 없이 위험부담을 안은 채 돈을 댄 뒤 개발이익을 나누는 방식이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연간 10%선의 이자 수익을 얻는다면 이들은 개발 이익의 10~50%를 챙긴다. 투입자금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위험을 안고 '동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게 마련이다. 대신 사업이 망가질 경우 투자비도 함께 날린다는 것이 우리나라 파이낸싱과 다르다.

<표 참조>

미국계 M사는 인천의 송도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파이낸싱 형태로 투자한 데 이어 앞으로 아파트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적극 뛰어들기로 했다. 최근의 파이낸싱 업계 특징은 국내에 많이 들어온 외국의 연기금이 개발시장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독일.캐나다.호주.싱가포르의 연기금이 대표적이다.

최근 국내에 들어온 캐나다의 C캐피탈은 부동산 개발사업에 자금지원 방식으로 손을 댈 예정이다. 상가.오피스텔의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돈 줄 마련에 애를 먹게 될 시행사나 중견건설사를 주요 고객으로 삼을 예정이다.

사업비의 90%까지 빌려주는 대신 이자 외에 이익의 일부를 따로 챙기겠다는 조건도 제시한다. 빌딩 등에만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우리나라의 부동산 개발이 활발한 현실에 맞춰 파이낸싱에 뛰어들 계획이다.

시행사인 더피앤디 임현욱 부사장은 "국내 금융권이 부동산 대출에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판에 외국계 투자회사가 참여할 여지가 많다"며 "특히 땅값뿐 아니라 공사비까지 빌려준다면 안전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익을 나누더라도 괜찮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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