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5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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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두 사람 모두 허튼 얘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변씨의 주장대로 윤씨가 농간질에 능숙한 위인이 확실하다면, 설득력이 있는 쪽은 변씨였다.

어판장에 하역되는 원양태의 도매시세가 요사이 들어 부쩍 시세변동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시세가 뛰고 있었다.

캄차카에서 잡은 것이든 베링해에서 잡은 것이든, 50마리들이가 한 상자인 8통 명태의 경우만 하더라도, 부두에 어선이 닿을 적마다 하역시세가 들쑥날쑥하며 가파르게 치닫기 시작하더니 요즘 와서는 일만칠천원 이상을 호가하고 있었다.

유류비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었던 너덧달전과 비교하면, 벌어진 입을 닫지 못할 정도로 높은 가격이었다.

그들이 며칠후 주문진으로 회정했을 때, 윤씨가 한 상자에 일만구천원으로 매입을 했다면, 곱다시 그대로 믿어야할 것이 변씨는 벌써부터 억울한 것이었다.

거기다 할복작업까지 마치면, 원가는 더욱 올라갈 것이고, 그나마 쥐꼬리만한 이문도 반감되는 꼴이었다.

"그 형님의 미주알에서 다소 꾸린내가 난다 카디라도 설마 우리 세 사람한테까지 사기를 치겠습니껴. 지난 번에 대통령 한 번 잘못 뽑았던 탓으로 우리가 시방 황소 엉덩이에 받힌 놈처럼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꼴이됐다 카디라도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면, 우리가 뭘 믿고 살겠으며, 우리가 그 형님을 감싸주지 않으면 어느 놈이 그 형님을 감싸 주겠습니껴. 설혹 그 형님이 아니고 성인군자가 삼촌으로 대접하는 사람이라도 흉을 볼라카면 한정이 없는 법이라요. 안 그래요 형님?" 봉환이가 볼멘 소리로 윤씨를 두둔하고 들자, 변씨는 팔꿈치로 바로 곁에 있던 철규의 옆구리를 툭 쳤다.

물론 지난 번에 있었던 이 민박집에서의 승희와의 하룻밤을 상기시키려는 애꿎은 농짓거리였다.

봉환이처럼 미련하게 사람을 곧이곧대로 믿고 살다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새치기를 당하게 된다는 뜻이겠는데, 농을 하자는 행동이었다 할지라도 철규로선 가슴이 뜨끔한 일이었다.

무안을 당한 철규의 얼굴이 금방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으나, 봉환은 뜨거운 방구들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른 것으로 여기고 은밀한 내막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대통령 말이 났으니까 말인데…, 그 양반도 5년 임기동안 생판 맹물로만 지낸 것은 아니더군. 우리 국민소득이 달러로 계산해서 반으로 쪼그라들고부터 남북한간에 소득격차도 미미해져서 남쪽에서 감당할 통일비용을 줄여 놓았고, 기름값이 단 며칠 사이에 천정부지로 폭등하자 차타고 다닐 놈들이 없어 교통난은 저절로 해결되어 버렸다더군. 교통난이 해결되고부터 대기오염으로 콧구멍 새까맣게 될 걱정도 덜게 되었다는 게야. 그래서 요즘 서울 하늘에는 스모근가 뭔가 하는 것이 사라져 버렸어. 또 있어. 한선생처럼 실업자들이 많이 생겨나니까, 새 정부가 들어설 적마다 숙원사업이라고 게거품을 물고 떠들어대던,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으로 만들기가, 등 떠밀어서 내려보낼 것도 없이 자진해서 내려간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데? 그래서 요사이 농촌가면, 버리고 간 폐가옥을 무상으로 대여해주는 곳이 많아서 귀농한 사람들이 구태여 돈들여 집 지을 일도 없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해. 그 뿐인가.

월급쟁이들 주머니에 먼지만 풀썩거리게 되자, 뻔질나게 드나들던 접객업소 출입을 딱 끊어버려서 밤마다 가랑이 씻고 기다리던 계집들이 모두 문 닫고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거여. 하긴 초대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대통령치고 난마같이 얽힌 국사를 임기 말년에 말끔하게 해결한 대통령은 없었지?" 가만히 듣고 있던 봉환이가 넙죽 되받았다.

"형님. 그거 어디서 주워 들은 얘기요?" "뭐? 주워 들은 얘기? 어림 반푼치도 없는 소리 하지도 말아. 주워 듣긴 어디서 주워들어, 어판장 길바닥에서 춤추고 있던 얘기들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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