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모사드의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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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에선 4.19혁명으로 나라가 온통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던 1960년 봄 남미 아르헨티나에선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 의 요원 몇명이 한 사나이를 끈질기게 미행하고 있었다.

리카르도 클레멘트라 이름을 바꾸고 완벽하게 변장까지 한 그 사나이는 6백만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거물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

그를사살하는 일은 모사드로선 식은 죽 먹기였으나 곱게 모셔 유대인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는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다.

D데이는 아르헨티나 독립기념일인 5월12일로 정해졌다.

이스라엘은 축하사절단을 태운 특별기를 보냈고, 며칠 후 이 비행기는 쥐도 새도 모르게 아이히만을 이스라엘로 압송했다.

51년 다비드 벤 구리온 당시 총리의 지시에 의해 창설된 모사드가 세계 모든 나라로부터 경이와 찬탄의 대상이 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뭐니뭐니 해도 모사드의 '실력' 을 완벽하게 입증한 것은 76년 7월의 '엔테베 작전' 이었다.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 (PLO) 의 인질로 잡혀있던 승객 3백여명을 안전하게 구출해낸 이 작전은 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버트 랭커스터, 그리고 커크 더글러스 주연으로 영화화돼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모사드의 막강한 위력도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선 모사드의 좌충우돌이 세계 평화와 반드시 합치되느냐에 대한 국제적인 여론, 그리고 공산권의 붕괴로 인한 활동범위 축소 탓이었다.

특히 미중앙정보국 (CIA) 은 40년간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모사드의 90년대 위상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엔테베 작전' 과 같은 특공대 형태의 공작엔 능할지 몰라도 순수한 정보수집 능력에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모사드 요원이 요르단 암만에서 하마스 지도자를 암살하려다 발각된데 이어 최근 스위스 베른 외곽의 한 주택에 도청장치를 하던 모사드 요원 5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실은 모사드의 실추된 위상을 한마디로 대변한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는데 자국 (自國) 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는 어찌 돼도 괜찮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속성을 버리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이젠 어떤 나라의 정보기관도 환골탈태 (換骨奪胎) 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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