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서 어거지로 이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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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이 영천에서만은 어거지로 이긴 거나 다름없다. 확실히 TK(대구.경북)는 변했다."

TK 지역 출신 한나라당 초선으로 영천 재선거를 지원했던 김재원(사진) 의원이 선거 후 당의 각성을 촉구하는 반성문을 인터넷에 띄웠다. 영천과 인접한 군위-의성-청송이 지역구인 김 의원은 지난 1일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금배지를 달고 완산시장을 누비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영천 시민들은 한결같이 '십수 년을 밀어줬지만 도대체 너희가 우리에게 해 준 게 뭐냐'며 손사래를 쳤다"고 토로했다.

김 의원은 이번 영천 재선거에서의 고전을 '영천 사태'로 규정하면서 "선거 실무자의 말을 빌리면 광주 금남로에서 한나라당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전엔 '우리가 남이가'로 통했는데 이제 민심은 보수.우파에게 '너희가 우리에게 해 줄 게 뭐냐,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 거냐'는 숙제를 던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그에 대한 답은 없이 기껏 '박근혜 대표 얼굴을 봐서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며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이냐"고 개탄했다. 그는 "영남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라기보다 현실주의자에 가깝다"며 "이번 선거에서 여당은 10조원을 지역에 뿌리겠다는 헛공약을 했지만 지역민들에겐 차라리 속아보고 싶은 달콤한 유혹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영천 사태'는 우파의 텃밭이라던 TK 지역의 정서가 굉음을 내며 폭발한 것"이라며 "정교한 이론과 그에 기초한 미래의 청사진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왼쪽으로 한 걸음 더 가자'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은 정치 철학의 빈곤함을 웅변적으로 증명해 주었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당의 진로에 대해 "사람의 능력 차이와 차별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원론적 문제부터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와 같은 구체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파가 지향하는 가치, 세계관, 인간관을 정립하고 그 그림을 국민에게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 출신인 김 의원은 젊지만(41세) 당내에선 철저한 '보수 신봉자'로 분류된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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