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내고 쓴 곳은 몰라 기부자 맘 상하는 사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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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01면

현금 305억원. 부산시 (주)태양 송금조(87) 회장이 6년 전 부산대에 이 금액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국내 개인 기부 사상 최대 금액이었다. 그러나 기부를 약속했던 송 회장과 수혜자인 부산대는 지금 법정에서 ‘300억원대 기부금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부산대와 ‘300억원 분쟁’ 1심 패소 송금조 회장의 울분

송 회장은 약속한 305억원 가운데 195억원을 낸 뒤 기부를 중단했다. 부산대 측이 기부금을 지정한 용도(경남 양산의 제2캠퍼스 부지 대금)에 쓰지 않고 멋대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나머지 110억원은 줄 수 없다는 소송(채무부존재)을 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부산지법 제5민사부, 고재민 부장판사) 판결이 최근 있었다. 뜻밖에 송 회장의 청구를 기각해 버렸다.

부산으로 내려가 1심에서 패해 110억원을 더 내야 할 상황에 처한 송 회장 부부를 만났다.

“항소할 겁니다. 진실은 밝혀집니다. 이건 우리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입니다.”

송 회장의 부인 진애언(64) 여사의 첫마디였다. 진 여사는 그간 고령의 송 회장 대신 소송을 도맡아 왔다.

왜 사회적 문제인가. ‘패자의 변’은 오히려 당당했다.

“국립대에 내는 돈은 (대학이 아니라) 국가에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 국고 이상으로 (집행) 절차가 투명해야죠. 기부금은 공돈이 아닙니다. 자기들 멋대로 쓸 게 아니에요. 그럼 누가 기부하고 싶겠어요. 어떻게 쓰이는지 반드시 증명이 돼야 기부자들도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겁니다.”

진 여사는 “회장님(남편) 연세가 올해 87세”라며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이 제대로 쓰이는지 살아 있을 때 확실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회장은 17세에 홀로 부산으로 내려와 막노동을 하면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한때 부산 지역에서 소득세 납부 랭킹 1위였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병아리 한 마리를 얻어 닭으로 키운 뒤 닭이 낳은 달걀을 팔아 다시 닭을 사고, 달걀을 또 되팔아 마침내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소 한 마리를 키웠다.

“회장님은 돈을 버는 것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분입니다. 대학의 씀씀이에 그래서 더 상처받은 거예요.”(진 여사)

그러나 부산대는 송 회장에게 받은 195억원은 정당하게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송 회장과 부산대 간의 2003년 기부 약정서엔 기부금 지출 용도가 양산의 제2캠퍼스 부지 대금이 아니라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 자금’으로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산대가 195억원 중 제2캠퍼스 부지 대금이 아닌 곳에 집행한 내역(학술연구조성비 38억3000만원, BK21 대응 투자연구비 8억5000만원 등등)도 정당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송 회장 측은 “우리가 양산 제2캠퍼스 건립을 위해 기부한 것은 세상이 다 안다”고 반박한다.

1심 재판부는 “원고 측은 기부금이 ‘부담부 증여’(증여할 때 특정한 채무 조건을 다는 것)에 해당하므로 부산대 측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나머지를 낼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부담부 증여로는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일각에선 이를 “기부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아도 기부자는 돈을 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부산지법 백태균 공보판사는 “그런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며 “재판부는 단지 (학교 측의 약정 불이행에 대한 특별한 조건을 달지 않고) 기부금 용도를 지정한 것만으론 ‘민법상 부담부 증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만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담부 증여로 인정되지 않은 이상 기부금이 목적대로 쓰였는지 여부는 재판부의 판단 사항이 아니었다”며 “목적대로 안 써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쟁점인 기부금이 목적대로 쓰였는지 여부는 아직 미결인 것이다.

송 회장 측은 “지금이라도 부지 대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명백히 밝히고, 잘못을 사과하면 돈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부산대 관계자는 “사과할 것도 없고, 사과하면 또 무슨 요구를 할지 모른다”고 일축했다.

평행선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평행선 사이엔 불신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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