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FTA 그물망’으로 동아시아공동체 주도하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4호 02면

‘평화의 섬’ 제주가 설레고 있다. 다음 달 1∼2일 제주도에서 열릴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를 앞두고서다. 양자 대화 관계를 수립한 지 20년이 되는 걸 기념해 이명박 대통령이 아세안 10개국 정상을 한꺼번에 초청했다.

김태환 제주지사는 15일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2회 아세안포럼에 참석해 “제주의 진면목을 알릴 중요한 행사”라고 말했다. 특별정상회의엔 10개국 정상과 각료·기업인 등 3000여 명이 한꺼번에 온다. 제주공항에서 중문단지에 이르는 40여km의 평화로 양쪽에는 각국의 국기와 홍보물이 나부껴 축제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이 대통령은 4강 외교를 일단락한 뒤 이른바 ‘신(新)아시아 외교’ 구상을 펼치고 있다. 권종락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아세안포럼에서 “동남아에 대한 기여와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아세안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지난해 약 3억 달러)를 대폭 늘려 나갈 것이라고 한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기업과 현지 교민들의 활약 덕택에 한·아세안 교역액은 2008년 902억 달러나 됐다. 아세안 전체로 따지면 중국·미국에 이어 우리의 3대 교역·투자 상대다. 중국의 사업 환경이 빡빡해지자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다시 주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해 ‘동아시아 외교 전략’을 새로 짜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양측은 이미 상품·서비스 분야의 FTA에 서명했고 제주 특별정상회의에서 투자 분야에도 서명할 예정이다. 사실 아세안이 단일 시장으로 급부상한 것도 회원국끼리 FTA를 체결한 1992년부터다. 아세안은 중국·인도·호주 등과 FTA를 체결해 ‘자유무역 허브’와 동서 아시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아세안은 또 2015년까지 한·중·일을 포함하는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 Community:EAC)를 성사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문제는 미·중·일 간의 경쟁과 견제다. 과거사에 발목 잡히고 지역 패권을 의식한 알력 때문에 EAC를 놓고도 오월동주(吳越同舟)하고 있다. 한국이 3강(强) 틈새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미국·유럽연합(EU)·인도는 물론 중·일과도 FTA를 추진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과 겹겹이 맺은 ‘FTA 그물망’을 통해 우리는 EAC를 주도하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동아시아는 전 세계에서 지역블록이 결성되지 못한 유일한 지역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정상 외교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역공동체는 일회성 이벤트만으로 결성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신아시아 외교’ 구호에 걸맞게 아세안 10개 회원국을 끊임없이 찾아가고 각국 정상과의 스킨십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과거 10여 년간 소원해진 한·아세안 관계를 가장 빨리 회복시킬 묘책 중 하나다. 최근 발족된 한·아세안 센터를 중심으로 쌍방향의 민간 교류를 활성화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