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는 바랬어도, 스타는 살아있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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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06면

테너 호세 카레라스는 2008년 9월 공연에 이어 채 1년도 안 돼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청중은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듯 그와 그의 음성을 반겼다. 고양문화재단 제공

지난 11일 중부 지방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이튿날 그쳤다. 봄비가 꽃가루를 씻어 내자 따뜻한 바람이 불었던 12일 저녁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 기온이 섭씨 24도까지 올랐던 이날, 공연장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연주자의 요청으로 냉방을 하지 않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청중이 1000명 넘게 모여 있는 공연장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객석에서 손부채질이 시작됐다.

호세 카레라스 독창회, 12일 경기도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절대 냉방하지 말 것”을 요구한 주인공은 테너 호세 카레라스(63ㆍ사진). 독창회를 연 이날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했다. 흰 손수건을 들고 무대에 올라 코와 입 주변을 연방 닦아 내는 모습이 감기에 걸린 듯했다.

연주 곡목도 바뀌었다. 1990년 첫 ‘스리 테너(Three Tenors)’ 무대에서 카레라스가 불러 청중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작품, 오페라 ‘아를의 여인’ 중 ‘페데리코의 탄식’을 프로그램에서 뺐다. 대신 남미ㆍ이탈리아의 노래들이 추가됐다.

카레라스는 목소리와 힘을 아꼈다. 자신만의 음색으로 터질 듯이 뻗어 내던 고음도, 강한 부분에서 보여 주던 날카로움도 사라졌다. 공연 전 기자간담회에서 스스로 했던 진단이 이랬다. “목소리에서 나이를 숨길 수는 없다. 얻은 것도 있지만 잃어버린 것도 많다.”

끝까지 가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듯한 노래가 세월 탓인지 아니면 당일의 컨디션 때문인지는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높은 음, 거대한 성량과 싸워 보려는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청중은 대부분 기립 박수를 보냈다. 6세에 데뷔해 57년 동안 무대를 지킨 성악가에게 객석의 시선은 고정돼 있었다. 카레라스의 강력한 무기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의 민속 악극인 ‘사르수엘라’와 남미의 탱고 등에서 음악을 쥐락펴락하는 표현력을 갖추고 있다. 듣는 이의 감정을 밀고 당기는 듯한 절묘한 솜씨는 수많은 무대 경험이 그에게 준 보상이다. 카레라스는 현재도 한 해 45~50회 무대에 선다. 웬만한 전성기 음악가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숫자. 그는 음역이 넓고 탄탄한 뒷심을 필요로 하는 오페라 아리아 대신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레퍼토리를 선정해 성악가의 경력에 윤을 내고 있다.

1990년, 음악계에서 ‘세기의 사건’으로 불린 ‘스리 테너’ 중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2년 전 작고했다. 플라시도 도밍고(68)는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카레라스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연결고리다. 파바로티를 보낸 이후 성악 팬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서 노래해 주는 나머지 테너들이 고맙기만 하다. 다소 힘이 빠진 듯한 소리에도 카레라스는 여전히 세계적 성악가의 아이콘이었다. 백혈병을 극복한 테너라는 타이틀도 따뜻한 시선의 이유로 충분하다.

성악가에게 중요한 것은 물론 완벽한 소리다. 하지만 카레라스의 독창회는 청중이 그와 나눴던 추억, 인간적인 교감 또한 스타 성악가를 만든다는 점을 보여 준 좋은 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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