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프랑스 로베르著 '로마에서 중국까지'…문화·종교적 교류 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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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주 먼 동양 끝에는 나뭇잎에서 비단 실을 뽑아내는 사람들이 1백50세까지 장수하며 살고 있다.”

“서방의 대양 너머에는 땅속에 금은보화가 무궁무진하고 찬란한 색깔의 옷을 떨쳐 입은 착한 사람만 사는 나라가 있다.”

1세기 작품인 베르길리우스의 '농경시' 와 5세기에 씌어진 '후한서' 에 남아 있는 중국과 로마제국에 관한 묘사다.

문헌만 보더라도 타국을 이상향으로 추켜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그 사이를 잇던 인도와 중동지역을 아우르며 각 민족간 접촉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로마에서 중국까지' 는 무역에서 시작해 동서양이 주고 받았던 문화적.종교적 영향을 면밀히 추적한 책이다.

(이산刊) 문화가 어우러져 또 다른 발전된 문화를 생성해 낼 수 있다는 역사관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현대에 펼쳐지고 있는 세계화의 원형을 두 대륙의 우호적 교류에서 찾고 있는 셈. 중국과 로마 모두 제국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다른 민족을 배척했다고 유추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서로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수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베그람 유적지에서 인도의 상아.중국 칠기.로마 청동상 등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저자는 “인류 역사에 서로 싸우지 않고 우정을 나누었던 시대가 남긴 증거” 라고 표현했다.

자문화 중심주의.민족간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가 무색하게 그 곳에서는 타문화를 경시하는 풍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 책은 마르코 폴로가 동양을 유럽에 소개했던 때보다 무려 1천여 년 앞선 1~2세기 세계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서양의 옛 문헌을 참고하고 다양한 가설을 세워 당시 경제상 등 생활모습과 로마.그리스.아시아의 예술적 융합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파리 자유대학에서 라틴어와 고대 로마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장 노엘 로베르 교수. 다큐멘터리 작가이기도 해 중국과 로마를 잇는 육로와 바닷길을 직접 답사했다.

로마와 중국의 공식적인 첫 만남은 166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중국 후한 (後漢)에 사신을 보내며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두 왕국은 직접적인 교역을 약속했다.

이후 동양에서 온 비단과 향료 등을 로마인은 최상품으로 꼽았다.

한편 중국인은 '후한서' 에서 로마의 집단지도 체제와 선거에 대해 언급하고 로마인의 미적 감각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중국과 로마는 상인과 모험가, 상상력이 풍부한 문학가를 통해 상대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쌓으며 지냈던 것. 물질적 교류 외에도 종교와 사상.예술이 상호간 영향을 주었다는 증거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금의 인도를 차지했던 쿠샨제국은 그리스 조각에서 표현양식을 빌려와 간다라 미술을 꽃 피웠다.

이 간다라 미술은 세련된 기법과 장식으로 부처를 신성하게 형상화해 불교를 중국.한국.일본까지 전파시켰다.

저자는 한 문화가 이웃 문화 발전의 촉매 역할을 해온 고대사에 비추어 현대인도 민족과 국가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거둘 것을 제안한다.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화의 상호수용을 무시한 편견일 뿐더러 21세기 인류 공동체 시대를 열어가기에도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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