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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은 처음에 벗하는 음식, 교태(交胎) 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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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만들어 그릇에 담고 난 뒤, 그 음식을 꾸미기 위해 모양으로 얹는 것을 '고명'이라 한다. 국수 위에 올리는 소고기편육, 호박볶음도 고명이고, 수정과 위에 동동 띄우는 곶감말이나 실백도 고명이며 비빔밥이나 도토리묵무침 위에 뿌리는 김가루 역시 고명이다. 평소에 먹기위한 음식을 만들 때나 촬영용 음식을 스타일링 할 때나 가장 준비를 많이 하고 신경을 쓰는 것이 고명이다. 어떤 고명을 어떻게 올렸는지에 따라 음식이 훨씬 더 맛있어 보이기도, 맛 없어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회갑이나 돌잔치에서 볼 수 있는 고임음식(한과, 과일, 떡 등을 층층이 쌓는 것)중에서도 고임 떡의 맨 위에 장식으로 올리는 예쁜 모양의 떡은 '웃기' 또는 '웃꾸미'라 한다. '위에'와 '꾸미다'라는 말이 변형된 이 말을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데 발음이나 말 자체가 예뻐서도 그렇지만 떡을 층층이 쌓아놓은 것에 또 다른 모양의 떡으로 장식을 하는 것이 너무 기발하고 재미있어서다.

고명이니, 웃기니 하는 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시의전서>가 나온 1800년대 말 이후의 일이다. 당시의 요리책이라 불리는 책에서는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웃기나 고명과 같은 뜻으로 쓰인 다른 이름이다. 그게 뭔고하니 바로 교태(交胎)다. 교태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음식지미방>이 나온 1670년 경인데 조선후기의 실학자 서유구가 지은 <임원십육지>에도 한자로 교태(交胎)라는 말이 나온다.

'사면은 소가 아니면 꿩을 곱게 다져서 볶아 넣는다. 간장국에 타면 교태하고 오미자국에는 잣만 웃기로 얹는다.' 이는 <음식지미방>에 나오는 대목인데 뜻인 즉, 국수를 그릇에 담고 장국을 부을 때, 소 혹은 꿩을 곱게 다져서 볶은 것을 국수 위에 얹고 장국을 부으라는 이야기다. 이때 '볶은 꿩고기를 얹는 것' 자체를 '교태한다'고 표현한 것으로 고명이나 웃기와 다름없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교태'의 한자 뜻을 새겨보면 교(交)는 사귈교, 벗할 교이며 태(胎)는 처음 태, 시작태로 음식에서 말하는 '교태'란 '처음에 벗하는 음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양에서는 우리의 고명 혹은 교태같은 것을 가니쉬라 부른다. 가니쉬 역시 음식의 모양이나 색을 좋게하고 식욕을 돋우기 위해서 음식에 곁들이는 장식으로 음식의 외형뿐만 아니라 맛을 좋게하기 위해 곁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눈에 거슬리게 튀거나 음식의 모양을 해치면 안된다. 가니쉬는 메인요리와 교대로 먹거나 함께 먹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가니쉬로 인해 음식의 맛이 좋지 않게 변형되어서도 안된다.

가끔씩 촬영용 음식의 스타일링에 음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혹은 올라가서는 안되는 교태를 올린 것을 볼 때가 있다. 식용이 아닌 나뭇잎이나 꽃을 올리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인데 외형상으로는 아름다워 보일지 모르지만 음식과 교태 맛의 어울림을 생각하면 더 없이 요상해서 오히려 식욕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처음에 벗하는 음식'이란 뜻과 같이 교태는 음식을 단순히 멋지고 예쁘고 맛있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음식의 첫인상과 맛을 결정하는데 큰 몫을 한다. 때문에 모양뿐만 아니라 맛과 영양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뜻에서 음식의 맛과 멋을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작업인 교태는 겉으로 보기에 별다른 의미가 없어보일지라도 먹는 사람을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한 요리사의 마음 표현인 것이다.

김은아 칼럼니스트 eunahstyl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