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꼬리가 몸통 흔드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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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는 같은 보험사지만 요즘 사이가 썩 좋지 않다. 생보사 신규 계약은 저조한데 민영 의료보험 같은 손보사 상품은 여전히 잘 팔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독립 보험대리점의 영업이 큰 변수가 됐다. 독립 대리점은 지난해 초까지 변액보험을 중심으로 생보 상품을 주로 팔아왔는데, 최근 손보 상품 위주로 방향을 틀었다. 이게 생·손보의 영업실적에 큰 영향을 줬다.

‘꼬리’인 대리점이 ‘몸통’인 보험사를 흔든 셈이다. 독립 대리점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1년 전 손보 상품 신규 계약 중 독립 대리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3% 수준이었는데 올 3월엔 20%로 높아졌다. 중소형 생보사 관계자는 “가뜩이나 시장 상황이 안 좋은데 대리점의 영업 초점이 바뀌면서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독립 대리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7일 독립 대리점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대리점 3668개= 독립 대리점은 지난해 말 3668개로 불어났다. 여기에서 일하는 설계사 수는 모두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8곳은 설계사 수가 1000명을 넘는다. 힘도 세졌다. 지난 2월 흥국생명은 ‘A+에셋 여우사랑 CI보험’을 내놓았다. 보험 이름에 ‘A+’를 넣은 것은 대표적 독립 대리점인 ‘A+에셋’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독립 대리점은 주로 중소형 보험사가 많이 이용한다. 메리츠화재, 한화손보 등은 장기 보험 신규 계약 3건 중 1건이 대리점을 통한 계약이다. 30여 개 대리점과 제휴를 맺은 알리안츠생명은 연말까지 제휴 대리점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일부 보험사는 서울 강남권에 독립 대리점의 사무실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우리투자증권 한승희 애널리스트는 “독립 대리점이 갑 역할을 하면서 보험사 수익엔 별 도움이 안 되지만 팔기 좋은 보험 상품이 늘어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엔 대리점의 활동 영역이 펀드로 확대됐다. 보험 설계사들이 펀드 판매 자격증을 따 개인사업자 형식으로 펀드를 파는 방식이다.


◆약 될까 독 될까=A+에셋의 박경용 본부장은 “여러 보험사 상품을 비교·분석해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는 점이 독립 대리점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도 대리점을 활용하면 전속 설계사 채용·교육·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잡음도 나온다. 선 지급 수수료가 대표적이다. 보험사들이 대리점에서 자사 상품을 더 많이 팔게 하려고 1~2년에 나눠 지급하는 설계사 수수료를 한두 달에 몰아 주기도 한다. 이런 선 지급 수수료를 챙기고 사라져 버리는 ‘먹튀 대리점’으로 보험사가 골치를 앓고 있다.

보험 계약자도 설계사로부터 꾸준한 관리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금감원 보험업서비스본부 문재익 부국장은 “소비자에게 상품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고 팔거나, 수수료를 노리고 보험 계약을 악용하는 사례를 집중 검사하고 있다”며 “대리점 경영과 관련된 주요 지표를 공시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독립 보험대리점=보험사의 전속 설계사와 달리 여러 보험사 상품을 함께 파는 보험 백화점이다. 외국계 보험사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2001년부터 대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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