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개혁 지금이 기회다]2.음반…유통 투명성 확보가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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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국내 가요음반에 대해 소비자들이 품는 흔한 불만은 듣고싶은 새 음반을 동네 소매상에서 제때에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명가수의 베스트음반이나 편집음반은 나오자마자 가게에 깔린다.

그러나 언론에 소개된 신인가수의 데뷔음반이나 화제가 되고있는 인디 (독립) 음반은 "예?

무슨 음반이요?" 는 대답만 돌아오기 일쑤다.

그래서 노래 좀 듣는다는 사람들은 번화가의 대형매장을 찾든지 음반사가 직영하는 PC통신 판매 사이트를 이용해온지 오래다.

최근에는 이런 고충이 한결 심해졌다.

음반 도매업체들이 줄줄이 부도를 내면서 음반사와 소비자를 잇는 연결고리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국도.대일.동양 등 국내 음반 도매시장의 60~70%를 담당해왔던 전국음반도매상협회 (도협) 소속 업체들이 IMF한파를 전후, 잇따라 부도를 냄에 따라, 8천여 곳으로 추산되는 전국 음반소매점들이 물건을 제때 못받는 사례가 속출하고있다.

이는 소비자들의 불편을 넘어 국내 음반 유통업계에 일대 구조변동을 일으키고있다.

그동안 한국 음반유통의 낙후성은 유명하다.

클래식.가요.팝을 합친 국내음반 시장규모는 연간 4천억원 규모로 세계10위권 내에 육박하지만 무자료 거래관행이 뿌리깊고 불법 복제음반이 활개쳐 정확한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불투명한 유통망 때문에 미국의 빌보드 차트같은 정확한 판매순위나 시장 특성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하고 40여 업체가 난립한 도매업계는 생존을 위해 '제살깎기' 경쟁을 벌여, 김건모.H.O.T처럼 히트가 확실한 소위 '대박' 급 가수의 음반만 집중 유통되는 결과를 낳았다.

자금력 부족을 이유로 현금 대신 어음결제가 보편화된 관행도 음반유통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킨 요인. 최근에는 일부 업체가 판매량이 공개되는 바코드 시스템과 현금결재를 시행하고있고 유통업체 연합으로 음반가격 정찰제도 발표됐지만 그 영향력은 아직 부분적이다.

가요계에서는 "이번 위기를 유통업계의 합리화를 위한 역설적인 기회로 삼아야한다" 고 입을 모은다.

기회를 살리기 위한 처방책은 두가지. 우선 바코드 시스템 등 투명하고 과학적인 마케팅기법을 갖춘 전문 유통업체 체제로 재편돼 무자료거래.불법음반을 뿌리뽑고 시장의 신인도를 높여야한다는 '전문화' 방안이다.

현재 삼성 등 대기업이 이같은 논리하에 진출 채비를 하고있는 반면 기존 도매업체들은 취약한 도매시장을 독점하려는 처사라며 극력 반대하고있어 마찰이 예상된다.

어쨌든 도매업체들의 이런 주장이 호응을 얻으려면 강도높은 자체 개혁이 요구된다는 것이 가요계의 시각이다.

또다른 처방책은 음반생산자가 소비자에 직매하는 방식을 통해 유통단계를 줄이고 음반 소프트를 다양화하는 '슬림화' 방안. 재능은 있지만 마땅한 데뷔기회가 없는 신인들이 직접 음반을 만들어 대학가 등 특정지역에서 직배하는 인디음반은 슬림화의 좋은 기초다.

이미 지난해부터 '드럭' '인디' '강아지 문화예술' 등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이 만든 독립음반 레이블이 뿌리를 내리고있다.

대중음악 평론가 이효영씨는 "인디음반은 음반당 4천원에 달하는 유통마진을 줄이고 다양한 음악 소프트를 형성해주는 만큼 소매상과 대중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고 말한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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