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부담감 지나쳐 놓친 '준비된 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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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날 경기 스타트 총성이 울리기 전까지 이규혁에게 주어진 조건은 최상이었다.

이규혁은 전날밤 있었던 대진추첨에서 가장 마지막 조인 22조에 편성되면서 인코스를 배정받았다.

막판 스퍼트가 좋은 이규혁으로서는 다른 선수들의 기록을 확인한 뒤 경기전략을 세울 수 있는데다 골인지점을 앞두고 인코스로 돌 수 있어 가장 바라던 조건을 갖춘 셈이었다.

더군다나 앞조까지 최고기록을 낸 선수는 17조의 이드스 포스트마 (네덜란드) 로 1분10초64. 지난해 10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벌어진 월드컵 2차경기에서 자신이 세운 최고기록 1분10초42보다 무려 0초22나 뒤진 것이었다.

이날 캐나다의 케빈 오벌랜드와 한조가 된 이규혁은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출발부터 삐끗했다.

출발 총성이 울린 뒤 이규혁은 다소 늦게 스타트를 끊어 오벌랜드보다 뒤진 16초97로 2백m지점을 돌았다.

1분11초벽을 깨려면 2백m기록이 16초대 중반은 돼야 했다.

이에 부담감을 느낀 이규혁은 마지막 코너에 접어들며 혼신의 힘을 다해 막판 스퍼트에 나섰다.

그러나 코너를 벗어나는 순간 몸중심이 흔들리며 주춤하는 바람에 결국 13위로 밀려났다.

결승선을 통과한 이규혁은 머리를 감싸 쥐었고 경기장 응원석에서 아들의 선전을 기대하던 이규혁의 부모는 고개를 떨궜다.

지난 60년대 한국빙상 최고의 스프린터로 68년 프랑스 그레노블올림픽에 출전한 바 있는 이익환 (52) 씨와 한국피겨스케이팅의 여왕을 지낸 이인숙 (42) 씨가 아들에게 대신 걸었던 올림픽 메달의 꿈이 미뤄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이날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첫 금메달을 기대했던 한국 선수단의 바람이 무너져 내리는 현장이었다.

나가노 = 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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