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정치] ‘쇄신의 정치’그 말은 항상 누군가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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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 중국에서도 이런 예가 있었습니다. 1967년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 공산당의 2인자였던 류사오치(劉少奇) 국가주석의 실각이 대표적입니다. 류사오치는 “자본주의의 길을 걸은 실권파이자 당의 배신자”라는 홍위병의 공격을 받고 결국 2인자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는 1940년대엔 마오쩌둥과 함께 공산당 내 정풍운동을 주도했던 당사자였습니다.

국내에서도 2000년 유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같은 해 12월 2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들의 청와대 만찬 석상의 일입니다. 재선인 정동영 당시 최고위원은 실세이던 동교동계 맏형 권노갑 최고위원의 면전에서 “당이 대통령 측근 중심의 사선에 의해 움직인다. 권 위원이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권노갑 최고위원은 “내가 제2의 김현철이란 말까지 나왔다”며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정 의원에 이어 정치 쇄신을 앞세운 소장파 의원들이 가세하자 보름 만에 결국 사퇴하고 맙니다. 당 지지도가 하락하는 등 시련이 계속되자 이듬해 5월엔 민주당내 초·재선 의원을 주축으로 정풍운동 바람이 일어 그해 11월 김대중 대통령이 당 총재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도 2002년 12월 대선 패배 이후 쇄신의 바람이 크게 불었습니다. 당 쇄신특위 위원장인 원희룡 의원이 당시 초·재선의원 모임인 ‘미래연대’의 대표로 ‘인적 쇄신’을 요구한 것이 시작입니다. ‘60대 이상 용퇴론’ ‘5·6공 인사 청산론’이 이어졌습니다. 쇄신 요구는 2004년 17대 총선 공천에서 최병렬 대표를 포함한 현역 60여 명의 물갈이로 귀결됐습니다.

한나라당에서 지금 또다시 쇄신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지도부 교체론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비선에서 당무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쇄신 대상”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쇄신 바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당내 계파와 권력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초·재선 의원들이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벌이는 정치 혁신운동”(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라는 평가와 “경선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의 갈등이 본질이기 때문에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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