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디자인·서비스 주력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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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기업은 이제 수출 위주의 자동차나 전자제품 제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디자인과 마케팅·서비스에 집중해 내수 소비자를 잡아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2003~2006년)를 지낸 라구람 라잔(사진)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조언이다. 그는 1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삼성증권 주최로 열린 ‘삼성 글로벌 인베스터스 콘퍼런스’의 기조연설을 하면서 “이번 경제위기를 계기로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은 더 강하게 태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경제 정책이나 산업 전략을 새로운 환경에 맞춰 잘 조율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그는 이날 별도의 기자간담회를 열고 “세계 경제는 당분간 저조한 성장세를 이어 갈 것이며 본격 회복엔 2~3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증시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험 회피를 위해 지난해 신흥시장을 떠났던 외국인투자자가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 돌아오고 있다. 경기 후퇴에도 버텨 낼 수 있는 건 신흥시장이란 믿음 때문이다. 또다시 충격이 온다고 해도 신흥시장은 생존할 수 있다는 신뢰도 높아졌다. 이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투자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이머징 시장은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데.

“맞다. 한국이 전형적인 경우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이머징 마켓이 부상할 수 있는 기회다. 부유한 국가는 소비를 줄여 나가고 있다. 이를 대체할 수요는 결국 브릭스(BRICs)와 한국·멕시코 같은 신흥시장에서 나올 것이다. 따라서 신흥국 기업들은 내수 소비자를 잡아야 한다. 초저가 차로 인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인도의 타타자동차가 좋은 예다. 영화 산업도 그렇다.”

-한국 정부는 ‘녹색 뉴딜정책’을 비롯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조언한다면.

“경기부양책은 임시 방편이 돼서는 안 된다. 장기적으로 보고 인프라나 교육 여건을 개선하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창의적인 인재가 몰려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수한 전문직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서울이 전문직이 좋아하는 환경도시·국제도시가 돼야 한다. ‘그린’ 정책은 이런 점에서 가치가 있다.”

-세계 경제 회복은 언제쯤으로 전망하나.

“각국의 경기부양책 덕에 경기 침체 속도가 줄어들고 안정화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이 경기 침체의 끝은 아니다. 악화된 재정 상황이 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흔히 V자·U자·L자형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얘기하는데 당분간 저조한 성장세를 이어 가는 U자형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 회복엔 2~3년이 걸릴 것이다.”

-미국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대해 평가한다면.

“스트레스 테스트는 정부가 파악한 손실만큼 은행이 자본을 확충하면 정부가 밀어 주겠다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가 나서 ‘이게 바닥’이라는 정보를 주는 모험을 한 것이다. 문제는 은행의 손실이 정부 계산보다 큰 경우다. 자본 확충 뒤에도 은행의 2차 손실이 발견된다면 정부는 신뢰를 잃게 된다. 이 경우 처음보다 더 나쁠 수 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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