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토는 지금 큰 병에 걸려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40여년간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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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토는 지금 큰 병에 걸려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40여년간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해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로 성장했으나, 1995년에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한 이후 10년 가까이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지역 간, 계층 간 격차와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그 원인 가운데는 과거 정부주도 고도성장시대의 중앙집권적.불균형 성장전략과 이에 익숙해진 경제.사회구조도 한몫을 하고 있다.

과거 한정된 자원으로 성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가주도로 특정지역과 특정산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 집적의 이익과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했으나, 이제는 이러한 국가주도형 불균형발전 모델의 결과로 인해 수도권에 인구와 산업이 지나치게 집중돼 집적의 이익보다 폐해가 크게 나타나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지방은 인구와 산업이 끊임없이 빠져나가 황폐화되고 자립기반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경쟁력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수도권의 높은 땅값과 물류비, 그리고 수도권 집중억제를 위한 각종 규제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리고 있고, 높은 집값, 교통난, 환경오염 등 악화되는 생활환경은 수도권 주민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환경과 생활환경은 내국기업은 물론 외국기업의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에는 글로벌 100대 기업의 동아시아 지역본부가 1개에 불과해 홍콩(22개).싱가포르(12개), 심지어 베이징(5개)보다 적은 실정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도권 집중을 방치할 경우 수도권은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돼 국제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또한 수도권이 정치.경제.사회.행정.문화 등 거의 모든 기능을 독점함에 따라 지방의 소외감은 날로 커지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심화는 지역 간 갈등요인이 되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경쟁전략으로 숨가쁘게 질주하고 있는데, 우리는 수도권과 지방이 갈등하고 서로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2만달러 나아가 3만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이제 국가운영 패러다임을 과감히 전환하고 국토공간구조를 개편하는 등 새로운 국가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이 같은 국토공간구조 개편의 기초다.

일부에서는 신행정수도가 건설되면 수도권의 고급 인력과 자원이 충청권으로 빠져나가 수도권 '공동화'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신행정수도에는 현재의 서울과 수도권의 모든 기능을 이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행정기능만을 이전하는 것이다. 또한 신행정수도 건설을 통해 수도권의 과밀을 해소함으로써 수도권을 계획적으로 관리해 명실상부한 동북아의 경제중심지로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신행정수도 건설로 중앙에 집중된 권력 및 기능을 과감하게 지방에 분산해 지방의 창의와 자율을 향상하고 발전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전국이 고루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신행정수도 건설과 함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혁신클러스터를 육성함으로써 전 국토가 균형있게 발전하게 된다. 지난 6월에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경제보고서에서도 '한국이 수도를 중부권으로 이전하게 되면 수도권지역의 집중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근 신행정수도 건설이 본격 추진되는 상황에서 새삼 건설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그러나 신행정수도 건설과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 수도권 규제 개혁을 통한 동북아 중심지로의 도약 등의 과제는 하나의 패키지 정책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수도권의 과밀과 지방의 발전이 동시에 추진되지 않고는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고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대안없는 비판,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대의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이춘희 신행정수도건설추진단 부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