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난맥 사례들…즉흥처방 부작용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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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에 돌입한 이후 각종 정책들이 대량 생산되고 있다.

시간에 쫓겨, 또는 정치권의 이해에 쫓겨 쏟아지는 정책들이 제대로 '품질관리' 가 된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거꾸로 가는 정책 = 여당이나 정부가 은행들에 기업어음 (CP) 을 연장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관치 (官治) 금융이다.

정책금융 확대도 문제다.

정부는 최근 연5%짜리 한국은행 총액대출한도를 1조원 늘렸다.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지만 정책금융처럼 특혜성 대출은 줄여나가기로 큰 방향이 잡혀있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중소기업 지원을 재정에서 부담하지 않고 통화쪽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 라고 지적했다.

내국인은 외국인이 매입한 은행에 한해 지분참여를 허용한 내국인 은행소유 제한도 역차별이다.

재경원 고위 관계자는 "내국인 대주주의 대출한도를 엄격히 통제하면 될 일이지만 내국인에게 은행소유를 허용하면 여론이 들끓어 어쩔 수 없다" 고 말했다.

◇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 = 외국환관리법 폐지가 대표적이다.

이는 지난해말 국민회의와 미국 정부간에 거론된 이후 여당에서 계속 나오는 얘기다.

하지만 폐지되면 국내 자금이 해외로 대거 빠져나가는 등 부작용이 엄청나다.

재경원 관계자는 "외국환관리법 폐지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정치권에서 자꾸 얘기하고 있다" 고 불만을 토로했다.

회장실.기조실 폐쇄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김주형 (金柱亨) LG경제연구원이사는 "결합재무제표를 도입하고 상호채무보증을 금지하면 경영의 투명성이 높아져 회장실.기조실은 자연히 없어진다" 며 "필요성이 없어지면 사라질 조직부터 먼저 정리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가시적 성과에 연연하는 인상이 짙다" 고 지적했다.

◇ 정부가 확대.재생산한 정책 = 대기업간 빅딜 (사업 맞교환) 이 대표적이다.

여당에서 빅딜 얘기가 나오자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는 한술 더떠 30대그룹 기조실장을 불러놓고 이달 24일까지 빅딜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재계 반발이 예상외로 커지자 김용환 (金龍煥) 비대위원장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고 해명, 해프닝으로 끝났다.

IMF와 고금리 인하에 합의했다는 정부의 발표도 해프닝에 가깝다.

휴버트 나이스 IMF협의단장은 "환율이 안정되면 금리를 낮출 수 있을 것" 이라고 원칙을 밝혔을 뿐이다.

◇ 오락가락 정책 = 1년짜리 신종적립신탁을 신설했다가 두달만에 폐지한 것도 땜질식 처방 사례다.

S은행 신탁부장은 "새로운 금융정책이나 신상품을 내놓을 때는 금융기관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부작용이나 파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정부가 급한 불을 끄는데 급급하다보니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고 주장했다.

상호지급보증 초과분에 벌칙금리를 물려야 한다는 비대위 지적에 대해 지난달 중순 전윤철 (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이 "검토하고 있지 않다" 고 밝혔다가 그 후로 비대위.공정위의 여러차례 번복끝에 결국 벌칙금리는 없던 일로 결론냈다.

박의준·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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