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죽일 수 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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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결승 1국] ○·쿵제 7단 ●·이세돌 9단

제6보(42~49)=흑▲는 근거의 요소다. 바둑은 넓은 곳부터 차지하는 게 요령이지만 그에 앞서 ‘죽음’을 피해야 한다. 한데 42는 꼭 받아야 할까. 귀는 이미 살아 있는 것 아닐까. 바로 이런 데서 프로는 갈등한다. 손 뺀다면 ‘참고도 1’ 백1이 제일 큰 곳이지만 흑2, 4를 선수 당한다(손 빼면 흑A의 치중으로 백 대마는 발가벗은 채 중앙으로 쫓기게 된다). 말하자면 흑6까지 전혀 다른 바둑이 된다.

42로 둔 것은 귀의 실리를 지키며 흑을 미생마로 만드는 수. 우선은 43, 45가 커 보이지만 미래 가치는 42가 더 낫다고 본 것이다. 쿵제 7단의 42에 프로들은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바둑은 차근차근 전진하는 것. 후수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하고 허황됨에 끌리지 말아야 하는 것. 힘을 비축한 쿵제가 46으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다음 수가 어디일까 싶을 때(죽음이 두려워 반사적으로 B에 두는 건 하책이다) 이세돌 9단은 47로 힘차게 육박한다. 귀는 죽인다는 것인가. 누군가 묻자 “죽일 수 있지”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박영훈 9단은 ‘참고도 2’처럼 사는 그림을 보여 주며 이 정도면 평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쿵제는 48로 강렬하게 붙여 갔고(47에 대한 응징, 귀를 잡겠다는 의지가 와락 전해 온다) 여기서 이세돌 9단의 49가 새털처럼 가볍게 떨어진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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