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일본 때리기'…"일본은 아시아경제 악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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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시아 금융위기와 관련, 지난달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미 의회청문회에서 '일본 때리기' 분위기가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의회 증언에 나선 미국 전문가들은 일본을 “아시아 위기 제1의 악당 국가 (villain)” 라고까지 지목했고, 일본의 거시경제정책을 “재앙을 불러오는 정책” 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개혁촉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 위기를 계기로 한 이번 '일본 때리기' 는 종전보다 훨씬 강도가 높아 앞으로 세계질서.경제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익명을 요구한 워싱턴 국제경제연구소 (IIE) 의 한 아시아지역 전문가는 전망했다.

한편 미의회는 IMF 지원방식이나 미국의 IMF 추가출자 등에 대해서는 반대보다 찬성이 많았다.

◇ 일본 때리기 = 일본의 정책을 비난하는 미국 전문가들의 논리는 예전과 다르지 않다.

“아시아 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하는 경제대국 일본이 수출이 아닌 내수와 수입을 부추겨 성장의 엔진을 가동시켜야만 아시아 위기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프레드 버그스텐 IIE 소장) 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일본 때리기' 에 동원되는 어휘나 내용의 강도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버그스텐은 이번 위기 전체를 통틀어 '제1의 악당 국가' 가 어디냐고 한다면 단연코 일본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최근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아시아 국가들을 이웃으로 두고 있었고, 금리는 0% 수준이었으며 무역흑자를 내온 일본이 0% 성장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일본의 경제정책은 세계 최악이며 일본의 금융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면서 일본은 아직도 문제해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로버트 죌릭 전 국무차관은 수출의존의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일본은 경기부양이 절실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물건을 사올 수 있는 국내시장을 만들어놓지 않았다고 지적, 일본은 지금 1930년대 미국이 잘못했던 보호주의와 금융기관 보호정책을 답습함으로써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미국은 일본에 최대한의 압력을 넣어야 한다” 면서 “가능한 한 최대의 압력을 가하기 위해 서방선진7개국 (G7) 회담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죌릭은 중국과 한국도 회담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국 관련 = IMF 지원대상 국가들이 경제개혁을 확실히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은 매번 빠짐없이 강조됐다.

미 업계의 의견으로는 예컨대 한국의 반도체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스티븐 애플턴 회장이 증언에 나서 삼성.현대 등 구체적 이름을 거명해가며 “정부지원을 받은 이들 한국 재벌들이 미국의 D램시장을 잠식했으며 미국은 IMF지원이 이들 한국 생산업체들에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고 주장했다.

한편 짐 리치 하원 금융위원장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개혁의지를 밝힌 점이 매우 인상깊었다” 며 “한국이 그처럼 훌륭한 지도자를 갖게 된 것은 큰 행운” 이라고 언급했다.

청문회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한국지원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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