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10대 한국병]12.<끝>새틀을 짜자…화합속 비전제시(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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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병의 실상을 조명해 볼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리더십 부재와 시민정신의 결핍이다.

이 두가지는 오늘의 국난을 불러온 중요한 원인이다.

지도자, 특히 대통령의 자질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오늘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가 필요하다.

비전.화합.진정한 용기의 리더십이 그것이다.

오늘의 국난은 리더십 부재에 크게 기인하나 그런 리더십을 선택한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준법정신.질서의식의 결여 등 시민정신의 결핍 또한 치유돼야 할 한국병이다.

이 시점에서 지도자와 국민이 위기 극복을 위한 대수술의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새로운 계약관계를 설정하고 문자 그대로 '가죽을 바꾸는' 개혁을 통해 새로이 판을 짜게 되면 '그날' 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일제하의 어두운 시절을 고뇌속에서 살았던 심훈의 시구가 국난을 맞이한 우리가슴에 절실하게 와닿는 요즈음이다.

국가가 부도직전의 위기상황을 맞이해 IMF에 손을 내밀게 되고 IMF의 조건에 의해 경제주권이 상실된 신탁통치시대를 살게됐다며 비분강개하는 사람도 많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외국사람들이 불러주던 '한강의 기적' 노래는 지금 어디로 사라졌는가.

우리는 이 시리즈를 통해서 10대 한국병의 증상을 진단하고 그 처방을 모색해 왔다.

이제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다른 시각에서 한국병의 실상을 조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리더십부재와 시민정신의 결핍이다.

◇ 리더십의 부재 = 리더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기억은 쓰라린 것이다.

“나를 믿으라” 고 해놓고는 먼저 한강을 건너고 나서 수많은 시민들을 뒤에 남겨두고 다리를 폭파해버린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깨끗한 척 큰소리치면서 수천억의 비자금을 챙기고 감옥에 들어갔던 지도자들도 있었다.

우리가 당면한 국난도 머리보다 건강관리에 더 신경을 써왔던 지도자의 지도력 부재에 기인한 바 크다.

오늘의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도자의 자질은 무엇인가.

첫째,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국민들은 IMF체제의 터널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빛과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함께 현난국의 실상을 진솔하게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우리가 다시 회생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럽지만 고질적인 한국병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함을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수술을 위해 지도자는 먼저 개혁을 추진할 세력을 결집해야한다.

그리고 개혁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마스터플랜과 액션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외에 공표해야한다.

둘째, 화합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는 동서간.남북간.빈부간등의 지역적, 계층적 갈등과 분열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제각기 다르지만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서로 비슷하다” 고. 어려운 때일수록 구성원과의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하는 화합의 지도력이 긴요하다.

셋째, 진정한 용기를 발휘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수술에는 언제나 아픔이 따르는 법이다.

개혁을 추진하다보면 때로는 인기에 반하는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이때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정도 (正道)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인기에 좌우되지 않는 진정한 용기의 지도력이 중요하다.

◇ 시민정신의 결핍 = 리더십강좌에서 흔히 듣는 얘기가 있다.

“나쁜 학생은 없다.오직 나쁜 선생이 있을 뿐이다.” , “나쁜 병사는 없다.

오직 나쁜 장군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얘기는 더 나간다.

“나쁜 국민은 없다.

오직 나쁜 지도자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말들의 진정한 의미는 지도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며, 추종자의 책임을 전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니다.

오늘의 국난은 리더십의 부재에 크게 기인하나 그런 리더십을 선택한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런 얘기가 있다.

차를 몰고 가다가 '앞으로 3킬로미터 가면 벼랑' 이라는 팻말이 나오면 일본인들은 그대로 돌아가는데 한국인들은 끝까지 가 본다는 것이다.

가다가 돌아오는 차를 보면서 “아, 저친구도 무언가 있길래 다녀오는구나” 하며 벼랑에 이를 때까지 가 본다는 것이다.

왜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됐을까. 팻말에 대한 불신, 그 팻말을 만든 정부에대한 불신이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준법정신.질서의식의 결여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우리는 도처에서 시민정신의 결핍을 보고있다.

만사를 대충대충하고 '괜찮아' 하며 어물쩍 넘어가는 장인정신의 결여,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개의치 않는 병폐,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려는 탐욕,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편하고 잘살아 보겠다는 이기주의…. 아마도 우리와 함께 살고있는 외국인들에게 적어보라면 끝없이 많은 병폐들이 줄지어 나오게 될 것이다.

종은 소리가 나지 않으면 종이 아니라고 한다.

시민이 시민정신을 잃으면 이미 시민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대표집필=이계식 〈한국재정학회회장·KD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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