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열며]신 십만양병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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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율곡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전이었던 1583년에 십만양병안을 주창했었다.

'율곡전서' 에 나타난 '연보' 에는 이를 선조16년 그가 병조판서로 재직중이었던 때라 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선생이 경연에서 계 (啓) 하여 가로되 국세가 부진함이 심하니 10년을 지나지 아니하여 마땅히 토붕 (土崩) 의 화가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미리 10만병을 양성하여 도성에 2만, 8도에 1만씩을 두어 군사에게 호세 (戶稅) 를 면해 주고 무예를 단련케 하고 6개월에 나누어 번갈아 도성을 수비하다가 변란이 있을 때에는 10만을 합하여 지키게 하는 등 완급의 비 (備) 를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루 아침에 변이 일어날 때, 훈련되지 아니한 백성을 몰아 싸우게 함을 면치 못할 터이니 그 때는 일이 모두 틀리고 말 것입니다. ” ('율곡전서' 권33, 부록1)

역사에 '만일' 이 통할리 없을 터이지만 그때에 만일 율곡선생의 경륜이 받아들여졌더라면 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암우한 인물들이 높은 자리에 있어 나랏일을 그르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율곡선생의 제안이 받아들여지기는커녕 평화로운 시대에 화근을 기른다 하여 탄핵을 받아 그는 사직하고 낙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고향으로 내려가며 지었다는 한편의 시가 오늘에 와서 새삼 새롭게 읊어진다.

“사방은 멀리 구름으로 캄캄하기만 한데/중천에 뜬 해는 밝기도 하구나/외로운 신하의 한 줄기 눈물/한양성을 향하여 뿌리노라.”

선생의 때에 느꼈던 캄캄한 사방을 오늘에 다시 직면케 되었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경제전쟁의 시대다.

이 시대의 군인은 기업이다.

옛날에는 용감한 군인의 숫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됐지만 지금은 경쟁력있는 기업의 숫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일언이폐지하고 우리나라가 지금의 경제적 좌절을 극복하고 세계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경쟁력있는 기업들을 길러내야 한다.

우리나라에 대기업 모임인 전경련 회원이 불과 4백이고 상장기업은 8백에 못 미친다.

그리고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회원이 6만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중 세계의 경제전에 나가 싸울 수 있는 전투력을 지닌 기업은 얼마나 될까.

이제 율곡선생의 '십만양병론' 에 귀를 기울이자.

10만의 군인이 아닌 10만의 기업을 길러내자. 율곡선생식으로 말하자면 중앙에 2만, 각 도에 1만씩의 기업을 기르되 이익을 남기는 기업으로 길러내자. 이 일에 국가의 역량 전체를 투입하자.

기업주들을 영웅으로 받들고 노동자들을 애국지사로 모시자. 기업의 창립에서부터 제품의 수출에 이르는 전과정에서 행정규제를 과감히 풀어 물흐르듯이 일이 풀려나가게 만들어 주자. 기업가들이 관청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기업현장으로 찾아가 행정업무를 대행해 주자. 기업활동을 괴롭히는 경찰.세무원.공무원이 있으면 중벌에 처해 기업가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자. 그래서 기업가들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밀어주자. 엔지니어들을 VIP로 예우하고 수출하는 사람들을 장군처럼 모시자. 지금 세계에 달러를 구걸하는 노력의 절반만 기울인다면 능히 가능할 것이다.

지금 당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 (IMF) 의 시련을 새로운 전기 (轉機) 로 삼자. 개구리가 뛸 때는 먼저 뒷걸음질부터 한다.

지금의 IMF가 21세기 번영의 시대를 맞기 위한 뒷걸음질이라 여겨 다짐을 새롭게 하자. 청문회가 능사가 아니다.

청문회 이전에 먼저 10만의 기업군 (企業軍) 을 길러 그들을 앞세워 세계로 뻗자. 세계시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김진홍 〈목사·두레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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