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부모 없는 아이의 대부 곽종옥 ‘풍익홈’ 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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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위라리. 전방을 지척에 둔 산골 마을에 다섯 살배기 애부터 대학생까지 46명이 한집에 모여 산다. 이 집 이름은 ‘풍익홈’. 원장 곽종옥(82·사진)씨가 이들의 ‘아버지’다.

곽 원장의 첫 직장은 평양의 보육원(옛 고아원)이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4 후퇴 때 돌보던 아이 6명과 함께 서울로 왔다. 신학교를 마치고 평생 고아를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한국전쟁 직후 군목으로 복무하던 국군 8사단 풍익대대가 부대 앞에 작은 천막을 세웠다. 갈 곳 없는 20여 명의 전쟁고아를 위한 보금자리였다. 당시 연대장은 제대를 앞둔 곽씨에게 아이들을 부탁했다. 그렇게 풍익홈이 생겼다.

그 후 55년. 천막은 건물이 되고 1000명이 넘는 아이가 이곳을 거쳐 갔다. 아이들은 성장해서 도시로 갔지만 곽 원장은 반세기 동안 같은 자리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품었다. 1950~60년대 정부 지원도, 독지가도 없던 시절에 곽 원장은 혼자 힘으로 스무 명 넘는 아이를 길렀다. 주변 군부대를 찾아다니며 도움을 청했다.

“모두 어렵던 시절인데 버려진 애들이야 말할 것도 없죠. 지금도 그때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혔던 게 생각나 마음이 아파요.”

당장 먹을 걸 걱정하면서도 교육에 대한 신념은 꺾지 않았다. 서울의 큰 교회, 미군부대 등을 찾아다니며 사정했다. 이 덕분에 모든 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쳤다. 원생들 일부는 70대 노인이 됐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오는 중년의 딸도 많다.

“최근에는 손자(원생의 아들)가 판사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런 기쁜 소식도 있지만 사는 게 힘들어 연락이 끊긴 아이들이 제일 마음 쓰이죠.”

팔순이 넘었지만 곽 원장은 요즘도 아이들과 부대끼며 하루를 보낸다. 아침마다 학교 가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위해 기도한다. “요즘은 가정불화 때문에 수많은 아이가 상처받고 있어요. 이들에게는 사랑이 유일한 약입니다. 아직 제가 할 일이 많네요.” 곽 원장은 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87회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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