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더 좋은 아이, ‘하루 딱 1시간 공부’부터 시작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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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좋아하는 영재(右)가 멋진 슛을 보여 주자 아버지 장진영씨가 활짝 웃었다. [최명헌 기자]

요즘 초등학생들이 받는 공부 스트레스는 우려스러울 정도다. 특목고다, 대입이다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말에 초등학생 학부모들도 속이 탄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서울지하철 승무원 장진영(42·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씨는 축구만 좋아하는 아들 녀석이 걱정이다. “저 녀석은 뭐가 되려고 저러지.” 학교에서 전교 부회장을 할 정도로 활달하기는 하지만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어 보인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공부 개조 프로젝트팀이 ‘초등생 1호 대상자’ 장영재(12·신능초6)군을 만나봤다.

게임과 춤, 축구를 좋아하는 영재는 학교에서 ‘인기짱’이다. 수업을 마치면 친구들이 함께 놀자며 붙잡는다. 집으로 오다 말고 딴 길로 새 늦은 시간에 귀가하기 일쑤였다. 요즘은 학교가 끝나면 곧장 방과후 학교로 가지만 바로 근처에 축구 잔디구장이 있다는 게 문제다. 원래는 오후 8시30분이면 집에 돌아와야 하지만 친구들과 공을 차다 보면 시간은 쏜살같다. 영재도 공부를 잘해보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아버지 장씨는 맞벌이를 하며 아이 셋을 건사하다 보니 형편상 학원에 보내주지도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 집에 있을 때면 직접 공부를 봐주려고 하지만 영재는 억지로 시키는 공부에 몸이 배배 꼬인다. 아내는 병원에서 교대 근무를 하느라 밤낮이 따로 없어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둘 틈이 없는 듯하다. 장씨는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는 영재의 공부를 봐주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나서야 할지 고민이다.

부모는 공부 감독관이 아니다

프로젝트팀은 영재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빠가 옆에서 직접 공부시키는 것 어떠니?”

“답답해요. 하기 싫은데….”

프로젝트팀은 “공부와 사랑은 시켜서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재원 비상 공부연구소 소장은 “부모는 조력자가 돼야지 감독관이 되면 안 됩니다. 아이는 공부 노동자가 아니에요”라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이어 “자녀에 대한 부모의 확고한 신뢰가 있지 않으면 학원을 아무리 보내도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뢰의 반대말은 계약”이라며 “잘하면 그때 가서 믿어주는 게 아니라 잘못할 때도 아이를 믿어주는 것이 신뢰”라고 설명했다. 영재에게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은 마음, 약속을 잘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부모가 믿어주어야 한다.


영재가 공부할 때 가족들은 독서

현재 영재의 하루 일과는 초등생치고 상당히 빡빡한 편. 게다가 친구들과 놀기까지 하고 들어오면 집에서 공부는 거의 불가능하다. 프로젝트팀은 영재에게 “방과후 학교가 끝나면 일단 집으로 돌아와 딱 1시간만 공부하자”고 제안했다. 방과후 학교에서 하루 1시간 정도 갖는 자기 주도 학습 시간과 이후 집에서 1시간 정도 복습 및 예습에 투자하면 지금의 영재에게는 충분한 학습량이라고 판단됐다. 공부를 마친 오후 9시30분부터 영재는 자유시간을 갖는다.

영재가 집에서 공부할 1시간 동안 가족들도 모두 묵묵히 책을 보도록 한다. 영재가 공부를 하는지 체크하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족들이 다 함께 공부하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성적이 상위권인 누나 한솔이가 분위기(?)를 잡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프로젝트팀은 “영재가 약속을 못 지켰을 때 화를 내며 ‘왜 안 지켰느냐’고 비난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약속이나 계획을 제대로 지키기까지는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 이러한 것을 못 지켜서 아빠가 조금 실망한 건 사실이지만 내일부터 다시 잘해보자”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영재가 지킬 7가지 습관

영재에게는 당장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조금씩 공부 습관을 갖는 것이 시급하다는 데 모두가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해 프로젝트팀은 영재가 앞으로 하나씩 지켜나가야 할 7가지 공부 습관을 제안했다.

①공부에 대한 좋은 추억 만들기=어떤 공부를 하기에 앞서 왜 공부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또 책의 순서대로가 아닌 재밌는 것부터 공부한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은 욕심 내지 말고 빨간색으로 표시한 뒤 뛰어넘는다. 활동적인 영재에게는 서서 걸어 다니며 책을 읽는 등 공부도 움직이면서 해볼 것을 권했다.

②두뇌에도 맨손체조가 필요하다=매일 연산 연습을 하는 것이 두뇌에 좋다. 『기적의 계산법』(100칸 계산 시리즈, 길벗)과 같은 책을 이용해 매일 밥 먹듯이 꾸준히 하도록 한다. 책도 하루에 10분씩이라도 읽어야 한다. 영어는 엄마표 영어 학습법 책을 참고한다. ‘연산, 책 읽기, 영어 소리 내어 읽기’는 꾸준히 해야 할 두뇌 훈련이다.

③시험 공부는 진도 나간 그날 한다고 생각하기=영재네 반에는 ‘스스로 공책’ 쓰기라는 숙제가 있다. 수업 시간에 교사가 노트 필기를 시키지 않는 대신 집에서 스스로 공부한 내용을 적어오는 것이다. 이때까지 영재는 이 숙제를 등한시했지만 앞으로는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숙제를 위한 숙제’는 금물.

④진도 나갈 부분 큰소리로 읽어 보기=예습할 땐 교과서를 미리 읽어 보면서 이 부분은 선생님이 어떻게 수업하실까, 어떤 설명을 하실까 상상해 본다.

⑤마감 시간 정하기=시간 활용을 잘하려면 일을 시작하는 시간뿐 아니라 끝나는 시간도 정해야 한다. TV를 한 시간 동안만 보기로 했다면 알람을 맞춰놓고 본다. 알람이 울리면 TV를 끄는 연습을 하도록 한다.

⑥건강한 여가 습관 갖기=앞으로는 휴대전화도 사용 규칙을 정해 쓰도록 한다. 영재가 좋아하는 운동은 많이 하는 것이 좋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게임 중독이나 ADHD(주의력 결핍·과잉 행동 장애)의 가능성도 떨어뜨린다.

⑦자기만의 공부 스타일 찾기=10분 공부 후 5분 휴식, 20분 공부 후 5분 휴식 등 공부하는 시간을 잘게 쪼개 집중도가 높은 시간을 체크해 본다. 학습 계획은 아빠와 함께 세운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시급성·중요성을 생각해 보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지킨 것과 못 지킨 것을 반성하고 그 이유를 생각한다.

담임 선생님이 나섰다

이번 프로젝트에선 담임 선생님이 처음으로 참여했다. 누구보다 아이를 잘 알고 있는 분이 담임이라는 판단에서다. 영재 담임 안명숙 교사는 “영재가 평소 숙제나 청소를 안 하고 갈 때가 종종 있다”며 “하지만 다음 날 태도를 보면 일부러 빼먹는 것은 아닌 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안 교사는 아버지 장씨에게 “영재에게 기대를 걸어보셔도 된다”며 “학교에서도 책임을 맡으면 무척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안 교사는 또 “아이들이 매일 써 오는 알림장을 자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글씨는 예쁘게 쓰는지, 준비물은 챙겼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변화할 수 있다. 영재는 박 소장이 선물로 건넨 문제집이 마음에 드는지 만지작거렸다. 자신에게 공부하는 연습이 필요하듯 아빠에게도 잔소리를 줄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어른스러운 영재였다. 로봇을 좋아해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영재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프로젝트팀이 모두 응원하기로 했다.

최은혜 기자

프로젝트 신청 사연
학원 못 보내는 게 문제가 아니란 말에 희망 가져

“가정 형편 때문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못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장진영씨 가족은 한때 잘못 선 빚보증으로 형편이 크게 어려워졌었다. 지금은 당시의 충격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지만 자신으로 인해 가정이 위기를 맞았다는 생각은 아직도 장씨를 괴롭힌다. 맞벌이를 하며 가계를 꾸려가느라 바쁜 가운데 장씨 부부는 영재가 걱정이 됐다. 큰딸 한솔이는 과학고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작은딸 한빛이는 아직 초등 4학년이라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영재는 매일 친구들과 놀다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들어오곤 했다. 방과후 학교에 보낸 뒤에는 그나마 근심을 덜었지만 여전히 영재는 매일 밤늦게 귀가하기 일쑤였다.

“아이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저는 공부 안 한다고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악순환이 반복됐죠.”

신청 사연이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장씨는 뛸 듯이 기뻤다. 프로젝트팀의 상담을 받으면서는 반성도 많이 했다. 영재보다는 자신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또 생각한 것과 달리 문제는 학원을 보내지 못하거나 부모가 공부를 봐주지 못하는 데 있지 않다는 이야기에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프로젝트팀이 다녀간 뒤 장씨는 달라진 영재의 모습에 또 한 번 감동했다. “친구들의 놀다 가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집으로 바로 왔다”며 자랑하는 영재가 기특하기만 하다. 게다가 스스로 숙제를 하는 모습은 영재가 6학년 올라온 뒤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평가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에게 놀라운 변화였다. 장씨는 “우리 가족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영재도 “약속을 잘 지키겠다”며 장씨를 마주 보고 활짝 웃었다.

최은혜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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