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접속]한국정치 닮은꼴 국회의 불꺼진 전광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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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의도 국회가 국민적 허리띠 졸라매기 운동을 외면한다고 눈총을 받으면서 또 한번 움츠러드는 국회의 '명물' 이 있다.

국회가 '국회운영의 전산화' 를 내걸고 지난해 5월 본회의장에 설치한 전자투표 장치가 그것. 낙후한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증명하듯 그 장치는 8개월 동안 한번도 작동된 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예산낭비의 상징이 됐고 국회 관계자들은 외부에 알려질까 쉬쉬했는데 IMF체제 속에 '부각' 된 것이다.

의장석 좌우 벽면의 2개 전광판과 의원좌석을 연결하는 전산망 설치에 들어간 비용은 물경 9억1천여만원. 국회운영위가 95년 국회법 112조의 전자투표 조항을 근거로 96년 예산에서 이 돈을 빼왔다.

국회는 당시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의안 표결때 의원들이 좌석에 앉아 찬성.반대.기권버튼을 누르면 전광판 의원 이름 옆에 불이 켜져 기명 (記名) 투표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데다 출석여부도 한눈에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정기국회 이후 네차례 국회가 열렸지만 전광판은 깜깜했다.

여전히 기명투표는 대개 여직원 11명이 손으로 세는 기립표결에 의존하고 있다.

사무처측은 "의원들은 '기립표결을 하면 되는데 굳이 전자투표할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한다" 고 둘러댄다.

국회는 75년에도 전자투표 장치를 설치했다가 "표결조작의 위험이 있다" 는 야당의 항의에 떼밀려 한차례도 사용치 않다가 3년만에 철거한 전력 (前歷) 도 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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