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 '감동과 현실 사이' 고심…재계, "정리해고보다 어렵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측이 요구하는 대기업간의 사업 맞교환, 이른바 빅딜 (big deal) 문제로 재계의 고민이 가중되고 있다.

임창열 (林昌烈) 경제부총리.김원길 (金元吉) 국민회의 정책위의장과 5대 그룹 기조실장들의 22일 만남을 계기로 양측의 확연한 시각차가 재차 확인된 것이다.

'국민이 감동할만한 내용' 을 요구하는 정치권과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발상' 이라는 재계의 입장차는 이날 모임 이후에도 여전하다.

모임에 참석했던 한 기조실장은 "재계가 딜레마에 빠져있다" 며 '정리해고보다 더 어려운' 빅딜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5대 그룹은 23일에도 각각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계는 24일로 에정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김우중 (金宇中) 대우 회장의 면담에서 빅딜에 관한 재계 입장이 당선자측에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빅딜에 대한 지금까지의 재계 입장은 "원칙엔 찬성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선 실행과정에서 부닥치게 될 현실적인 문제점이 있다.

세금과 종업원 문제, 부채 이전 문제 등이 그것이다.

최근의 자금시장 여건에 비춰 필요한 자금 조달도 난제다.

빅딜을 공개적으로 선언할 경우 종업원들이 동요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점도 문제다.

팔겠다고 내놓았다가 안팔릴 경우의 국제적 신인도 하락도 예상된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빅딜이란 2~3등 기업을 1등 회사로 몰아주자는 발상인데, 현대와 대우는 대부분 업종이 겹치는 만큼 아예 대우그룹을 통째로 인수하라는 말이냐" 고 반문했다.

정치권 주도의 빅딜이 또다른 부작용을 가져오지나 않을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우그룹 관계자는 "당선자측의 여론몰이식 구조조정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 며 "정권이 출범하기도 전에 모양 갖추기에 치우치다 보면 경제살리기에 적지 않은 후유증을 가져올 수도 있다" 고 우려했다.

그런가 하면 LG그룹 관계자는 "유화.자동차.조선.반도체 등이 대상이 되겠지만 우리나라 기업여건에서 업종전문화를 해 기업이 잘 살아갈 수 있는지 빅딜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조건 등을 잘 따져봐야 한다" 고 말했다.

재계는 따라서 빅딜 문제는 시한을 정해두고 몰아붙일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손병두 (孫炳斗) 전경련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하지 말라고 해도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 고 말했다.

한편 22일 모임에 참석했던 재계관계자는 빅딜 문제가 거론되기는 했지만 대상 업종이나 대상 기업이 구체적으로 거명된 일은 없고 구조조정 실천계획 제출기한을 못박은 적도 없다며 사실이 와전된 것 같다고 밝혔다.

유규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