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볼만한 영화들]가족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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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가족이 해체되어 간다' 는 소리들이 지구 곳곳에서 들린다.

도시 문명이 확산되고 그 결과 개인위주로 생활이 재편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흐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따뜻한 가정' 이 증발해 버린 삶이란 얼마나 삭막할 지, 생각만해도 몸서리쳐진다.

'마르셀의 추억' 과 '나의 장미빛 인생' .둘 다 도시 문명의 첨단에 있는 유럽에서 만들어진 연휴 가족영화다.

프랑스영화 '마르셀의 추억' 은 작년에 소개됐던 '마르셀의 여름' 의 후속편이다.

전작이 아버지와 관련된 상념들에 기초했다면 이번 영화는 원제가 '나의 어머니의 성 (城)' 인 데서 알 수 있듯 모성을 향한 그리움이 밑그림이다.

성장해서 영화 감독이 된 마르셀은 촬영장소를 물색하러 나선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찾은 곳이 마침 어린 시절 가족들이 둘러보던 바로 그 저택임을 알게 된다.

그 당시엔 육중하게 닫혔있었던 성문이 성인이 된 자신에게 활짝 열리면서 잠자던 추억들이 줄줄이 엮어져 나온다.

그것은 아련한 슬픔같은 것이면서도 언제든 돌아가고픈 그런 세계다.

하지만 시간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옆 좌석에 앉은 어린 자식들의 착하디 착한 마음이 세파에 오염되지 않기나 기대해 볼 밖에. 멀쩡한 사내아이가 치마를 입으려하고 여자애처럼 앉아서 볼 일을 보고 로봇 대신 인형이나 가지고 논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자기 자식이라면 당장 '계집애처럼 무슨 짓' 이냐며 호통을 칠 것이고 남의 집 애라면 쯧쯧 혀를 차며 외면하지 않을까. 그건 바다건너 벨기에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나의 장미빛 인생' 에서 일곱살 먹은 뤼도빅은 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여자아이 같은 복장을 하는게 훨씬 편하다.

아니 그러질 못해 안달이다.

심지어 누나가 생리를 시작하면서 복통을 호소하는 걸 부러워한다.

그래서 배탈이 났는데도 “나도 달 떴다” 며 좋아할 정도. 참다 못한 이웃들은 “우리 애들까지 물 들겠다” 며 뤼도빅을 퇴학시키고 결국엔 이사까지 하게 만든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엄마 아빠에게서 마저 이해를 받지 못한 뤼도빅은 환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알록달록한 인형의 세계로 날아간 뤼도빅은 겨우 X 염색체 하나가 잘못 들어간 탓에 지나지 않는데 왜들 안달인지 모르겠다며 속상해한다.

남자의 특성은 어떻고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성적 (性的) 구분이 과연 확고 불변한 것일까. 동성애다 유니섹스다 하면서 성적 정체성이 문제시 되는 요즘,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어른들의 편견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작품상을 탔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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