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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활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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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맘때면 일본에선 2분기 흥행을 노린 새 드라마들이 쏟아진다. 올 화제작은 단연 ‘곤카쓰(婚カツ)’다. 제목은 요즘 일본에서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유행어 곤카쓰(婚活)에서 따왔다. 우리말로 하면 혼활, ‘결혼 활동’의 줄임말이다. 취업을 위한 활동을 취활(就活, 슈카쓰)이라 하듯 ‘보다 나은 결혼을 위한 적극적 활동’을 의미한다. 가족사회학자인 야마다 마사히로가 지난해 만든 말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제목엔 왜 ‘활(活, 카쓰)’자 대신 돼지고기 튀김 ‘돈카쓰(돈가스·豚カツ)’에 쓰이는 같은 발음 글자를 넣은 걸까. 줄거리에 답이 있다.

주인공 구니유키는 돈가스 가게 아들이다. 30대 중반 실직자지만 때는 취업 빙하기. 어찌어찌 구청 임시직 면접까지 갔는데 이런, 기혼자만 받는단다. “곧 결혼한다”고 우겨 취직에 성공하나 3개월 안에 아내감을 구하지 못하면 말짱 꽝. 구니유키의 불타는 결혼 활동이 시작된다. 일본에서 돈가스는 시험 전 먹는 필수 음식이다. ‘카쓰’의 발음이 승리를 의미하는 동사(勝つ)와 같기 때문. 혼활·취활에 목숨 건 돈가스집 아들의 분투기에 곤카쓰(婚カツ)란 제목이 붙은 연유다.

실제 일본의 혼활 열풍은 대단하다. 남녀 합석 1회에 1만1400엔(약 15만원)이나 받는 혼활 전문 바(Bar)가 인기다. 결혼정보회사의 프리미엄 회원이 되기 위한 스터디 모임이 성행한다. 혼활 지도사란 새 직업이 생겼다. 백화점엔 ‘혼활 지원 복주머니’ 세트까지 등장했다. 이런 현상의 양극단엔 ‘초식남(草食男)’과 ‘어라포’가 있다. 초식남은 얌전·성실하며 연애보단 취미생활에 열심인 독신남을 뜻한다. 지난해 일본 유행어 대상을 탄 어라포는 ‘어라운드 포티(Around 40)’의 준말. 우리로 치면 마흔 즈음의 골드미스를 가리킨다. 결혼엔 영 관심 없던 두 집단이 혼활족이 된 건 불황 탓이 크다. 감원·감봉 바람 속에 경제적 안정을 위한 최선책으로 결혼을 택한 것. 덕분일까, 지난해 일본의 성혼율은 5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사정도 비슷한 듯하다.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하는 20대 초반 여성과 재혼 희망자의 수가 부쩍 늘었단다. 저출산이 사회 문제가 된 지금, 능동적 혼활은 일견 권할 만하다. 그렇더라도 뒷맛은 쓰다. 결혼마저 이윤 중심의 경제 활동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세태를 어찌 봐야 할까.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