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레이디 맥베스…상상의 가치 일깨운 오브제 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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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상상의 가치를 일깨운 살아있는 오브제 연극 [ 레이디 맥베스 ] 이 시대 '연극다움' 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 (私) 소설적 신변잡기류의 대화만인 난무하고 의미없는 몸짓만이 무대에 나뒹구는 요즘 연극 (인) 은 고뇌하나 그 해답은 없다.

도리어 타협만이 능사여서, 연극은 점차 TV드라마를 닮아간다.

연기도 매한가지다.

식어빠진 정열과 시퍼런 지폐만이 흥정의 대상이다.

상업화의 휘둘림에 겉잡을 수 없이 표류하는 한 조각의 난파선이다.

그 '연극다움' 이란 진정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연극의 생명력은 상상이다.

'골치아픈' 상상과 사유 (思惟) 를 멀리해 직설법으로 설명해야 알아듣는 세상. 연극인들이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나 그 순간 연극은 '죽는다' . 이 안타까운 순간에 한 작품이 조용히 '삶의 연극' 을 외친다.

비록 울림은 작지만 그 파장은 가속도가 붙어 '죽어있는' 연극 (인) 을 능히 깨울만한 힘을 얻는다.

신선한 충격, 바로 극단 물리의 창단 공연작 '레이디 맥베스' 다.

내용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한태숙의 각색.연출은 던컨왕을 살해하고 왕권을 탈취한 맥베스 대신 그 부인 (레이디 맥베스.서주희) 으로 초점을 이동했다.

이런 시도는 그 자체로도 참신했다.

이는 연극이 주장하고 싶은 죄와 속죄의 과정을 보다 객관화하여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됐다.

남편을 선동해 살인을 저지르고, 동시에 가해자와 피해자 콤플렉스에 빠지는 등 극단적 양면성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 맥베스 부인의 설정 하나만으로 완벽한 구성력을 지녔다.

그 양면성에 대한 탐색과 자기반성의 과정은 궁중 전의 (典醫) 의 집요한 추적과 몽상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같은 설정을 시청각적 예술로 강화시킨 것은 스타일 (오브제 연극) 이었다.

아직 생소한 용어인 '오브제 연극 (물체주)' 은 그동안 장면구성에 소극적으로 개입했던 소품이나 의상 등에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이를 활용해 내용의 추이를 설명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연극의 표현력을 훨씬 높이는 것이다.

93년 '동맥' 이란 작품을 통해 이땅에 '오브제 연극' 을 처음 선보였던 이영란은 진흙.밀가루.물.헝겊을 사용, 던컨의 살해장면 등을 효과적으로 되살려냈다.

전면에 보이는 벽에다 진흙으로 사람 형상 (던컨왕) 을 그려, 핏빛 선명한 광기의 살인을 연출한 것은 뭉크의 명화 '절규' 의 상상력을 웃도는 압권이었다.

또한 긴장과 이완이 교차되는 절묘한 순간에 터져나오는 어어부밴드 원일 (작곡.음악) 의 음악적 실험은 극적 효과를 고조시켰다.

이처럼 내용과 스타일이 조화롭게 만나 잘 빚어진 연극. 바로 '레이디 맥베스' 는 그런 작품이다.

28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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