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우리 풍물]3.진부령 황태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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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용대리에 눈이 이렇게 퍼부은 게 실로 오랜만입니다.

기온만 뚝 떨어진다면 이번 겨울 황태작황은 좋을 것 같습니다."

30여년간 황태와 함께 살아온 최금분 (82.강원도인제군북면용대3리) 할머니는 창문너머로 밤새 내린 눈을 바라보며 입을 뗀다.

오후 3시부터 내비치기 시작했던 눈발이 밤이 되면서 더욱 거세진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온통 눈천지다.

노선버스와 체인을 팔러 다니는 차량만 간간이 다닐뿐 용대리는 적막속에 잠겨있다.

눈을 맞으며 고랑대에 주렁주렁 매달린 명태들만 바람에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백담사입구부터 시작해 진부령 중턱까지 이어지는 진부천에는 국내 최대의 황태덕장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 덕장이 들어선 것은 6.25 이후의 일. 청진.원산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기후조건이 비슷한 이곳에 덕장을 세웠다.

내장을 빼낸 명태를 영하 10도이하의 추운 지역에서 낮에는 녹이고 밤에는 꽁꽁 얼리면서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5개월간 서서히 말리면 황태가 된다.

살이 노랗고 솜방망이처럼 연하게 부풀어 고소한 맛이 난다.

"황태는 80%가 하늘이 만들어 줍니다.

명태를 덕장에 건 다음 1주일동안 바짝 얼리면 제맛이 납니다.

" 그래서 바닷바람에 말리는 북어에 비할 바가 못된다.

덕장은 ▶눈이 많고▶기온차가 심하며▶바람이 세게 부는 곳이 적지다.

국내에는 용대리 (강원도인제군).횡계리 (강원도평창군).거진항 (강원도고성군) 부근에 덕장이 산재해 있다.

그중 용대리는 국내에서 황태를 건조하기 위한 기후조건이 최적지로 손꼽힌다.

국내 황태의 80%를 생산하는 용대리에는 30여개의 덕장이 있다.

연간 1천만마리의 황태가 생산되고 있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배를 가른 명태는 진부천에 물을 막아놓고 씻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금은 부산에서 냉동차로 수송한 원양명태를 속초나 거진등 인근 어촌에서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낸 뒤 지하수로 깨끗이 씻어낸다.

여년동안 덕장일을 해왔다는 김승호 (44) 씨는 "70년대는 지금보다 더 추웠습니다.

명태가 들어오지 않는 날은 가둬놓은 물이 밤새 꽁꽁 얼기때문에 아침부터 도끼와 곡괭이를 이용해 얼음깨기에 바빴죠" 라고 어려웠던 당시를 회상한다.

장화나 비닐로 만든 우비가 귀해서 동상걸린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는 것이다.

황태말리기는 덕장을 세우는 10월말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덕대에 걸어놓은 명태에 눈이 오면 쓸어주고 비가 오면 썩지않게 가마니를 덮어준다.

덕대를 치우는 4월까지 일이 계속된다.

이렇게 해서 6개월동안 받는 노임은 약 10만원 (보리쌀 3가마)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건비도 올라 6개월간 7백만원정도를 받는다.

창바위덕장에서 만난 최명규씨는 "6개월내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지런하기만 하면 부업을 할 수 있어 생계에 어려움이 없다" 고 말한다.

정리해고등으로 고민하는 도시의 샐러리맨보다 마음이 편해 보인다.

강원도에 폭설이 내린 날 진부령에 오르니 체인을 판매하고 있는 최씨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는 "결혼했느냐" 는 질문에 씩 웃기만 한다.

그의 건강한 웃음속에서 도시인의 모습이 웬지 왜소하게 느껴진다.

글.사진 =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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