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자신감의 게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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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16면

강성훈(22)·위창수(37)·최상호(54)의 공통점은. 최근 열린 국내외 골프대회에서 1타 차로 아쉽게 우승을 놓친 선수들이란 것이다. 특히 마지막 날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퍼팅이 빗나가 우승 트로피를 다른 선수에게 넘겨준 경우다. 20대 초반의 강성훈과 30대의 위창수야 그렇다 치고 ‘퍼팅의 달인’으로 불리는 백전노장 최상호마저 어이없는 퍼팅 실수를 범한 것을 보면 골프는 참 알다가도 모를 스포츠다.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57>

프로 데뷔 3년 만에 첫 우승을 눈앞에 뒀던 강성훈의 경우는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움이 남는다. 최종 4라운드 17번 홀까지 1타 차 단독 선두. 마지막 18번 홀에선 투온에 성공해 11m 거리에서 2퍼트만 하면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 그러나 강성훈의 첫 번째 퍼트는 어이없이 길었다. 공은 홀을 2.5m나 지나쳤고, 결국 3퍼팅 끝에 우승의 꿈을 날려 버렸다.

“대회 내내 퍼팅이 짧기에 길게 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소처럼 퍼팅을 했으면 거리가 맞았을 텐데 홀에 가깝게 붙여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강성훈의 말처럼 그는 이날 내내 ‘생각’이 너무 많았다. 샷을 할 때마다 어드레스를 했다가 풀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신중하다기보다 소심함에 가까웠다.

미국의 스포츠 심리학자 밥 로텔라의 말을 빌리면 ‘골프는 자신감의 게임(Golf is a game of Confidence)’이다. 호사가들은 강성훈의 경우 우승 경험이 없었던 탓에 자신감이 부족했고 그 결과 우승을 놓쳤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신감이 먼저인가, 우승이 먼저인가. 로텔라는 “자신감이 없으면 우승할 수 없고, 우승하기 전에는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면 우승하는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로텔라의 말에 따르면 ‘자신감’이란 우승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로텔라의 말을 계속 들어 보자. “연습장에서는 스윙을 가다듬고, 코스에서는 그 스윙을 믿어야 한다.” 경기 중에 스윙 기술과 메커니즘에 대해 생각하면 자신이 낼 수 있는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른바 로텔라 법칙이다. 퍼팅에 관한 그의 조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퍼팅을 할 때 핵심 과제는 특정 목표를 향해 자유롭게 스트로크를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는 의심에서 비롯된 오류다.”

로텔라는 골프는 눈으로 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공에선 시선을 떼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눈은 마음속으로 목표를 계속 응시하라는 것이다.

일단 어드레스에 들어가 목표를 한번 바라본 뒤엔 바로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로텔라는 프레드 커플스의 샷을 예로 든다. 그의 부드러운 샷은 다른 말로 하면 ‘심플’ 그 자체다. 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가볍게 클럽을 잡은 뒤 부드럽게 공을 때려 낸다. 샷을 할 때마다 몸통 회전을 많이 하는 탓에 그의 허리가 좋지 않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의 샷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연습장에서야 피가 나도록 샷을 갈고닦았을 테지만 필드에서 보이는 그의 샷은 심플하고 단순하다.

밥 로텔라의 결론. ‘단순함’만이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다. 강성훈이 지난 대회에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우승 트로피쯤이야 아깝지 않다. 우승 트로피는 지금부터 모아도 늦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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