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성]장애딛고 자원봉사 나선 서정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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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월은 제게 언제나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큰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7년 전엔 잠자던 두 조카가 불길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니까요. " 7년 전 그 화재로 자신 또한 3도 화상을 입고 죽음 직전에서 살아났던 서정희 (徐貞姬.47.서울송파구가락동) 씨. 아직도 온몸엔 처절했던 그날의 상처가 생생하고, 그때부터 기울어진 집안 형편 역시 여전하지만, 그는 더이상 좌절속에 머물지 않는다.

중풍에 걸린 노인과 전신마비 장애인의 말벗으로, 또 불우이웃에 반찬을 만들어주는 자원봉사자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것. "불길이 직접 닿지 않았던 오른팔도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 마비가 됐어요. 하지만 가락시장에서 장사하던 우리집 사정으론 하루 10만원 꼴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중도에 퇴원해야 했죠. " 처음엔 화장실조차 혼자 갈 수 없어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단다.

간신히 교회만 오가던 徐씨에게 새 길이 열린 건 94년7월. 우연히 '독거노인들의 말벗을 구한다' 는 기사를 보고 나서기로 한 것. "왼쪽손가락은 문드러지고 두피 (頭皮) 한가운데가 벗겨져 모자를 쓴 제가 찾아가자 팔순 할머니는 깜짝 놀라시더군요. '난 행복하게 잘 살 때도 남에게 베풀어 본 적이 없다' 며 오히려 몸둘 바 몰라 하셨죠. " 3~4개월간 그 집을 드나들던 徐씨는 자신의 모습이 남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말벗봉사를 그만뒀었다.

대신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에게 전해줄 멸치볶음등 밑반찬을 만들어 복지관에 맡겼다.

徐씨가 다시 말벗으로 나선 것은 지난해 9월. 중풍때문에 온종일을 갇혀지내는 70대 어머니와 상이군인 아들 모자가 반찬보다 사람을 더 그리워하더란 얘길 듣고 용기를 냈다.

지금은 전신마비 부인도 1주일에 한번씩 찾아 돌본다.

새벽 신문배달료가 그의 자원봉사 자금원. "꼼짝 못하고 누워지내는 이들을 보며 남을 도울 수 있는 제가 훨씬 행복하다는 걸 깨닫곤 하지요. " 큰 아들이 죽은 뒤 남편도 당뇨병이 심해져 누워 있는 그이지만 "아직 제겐 직장 다니는 튼튼한 두 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며 행복한 표정이 된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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