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風' 항소심 무죄 판결] "청와대 자금" 강삼재씨 주장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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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는 지난 1월 31일자 1면 특종보도에서 이른바 안풍자금을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수표로 받았다는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의 진술을 처음으로 밝혔다.

"도마뱀의 꼬리를 자른다고 도마뱀이 없어지나. 도마뱀의 꼬리는 도마뱀이 현장에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안풍' 사건 항소심 재판부의 노영보 부장판사는 5일 강삼재 전 의원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에 대한 무죄 판결문을 읽어내려 가던 중 이렇게 말했다. '안풍' 자금의 출처를 사실상 김영삼 전 대통령(YS)으로 지목하면서 법정 증언을 거부한 YS를 질타한 것이다.

◇자금 출처는 'YS 비자금'=3년6개월간 진행된 '안풍'사건 재판의 최대 쟁점은 자금 출처가 안기부 예산이냐, 외부 자금이냐는 점이었다.

안풍 사건은 대검 중수부가 2001년 1월 "1995년 지방선거와 96년 15대 총선 때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과 김기섭 안기부 운영차장이 공모해 안기부 예산 1197억원을 선거자금으로 유용했다"며 두 사람을 '국고 손실' 혐의로 기소한 것을 말한다. 이는 김씨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었다. 당시 강씨는 국회 회기 등을 이유로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자금을 청와대에서 직접 받았다'는 강씨 주장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김씨가 YS에게서 받은 정치자금을 안기부 계좌를 이용해 관리하다 선거를 앞두고 다시 YS에게 전달했고, YS가 다시 이 돈을 강씨에게 줬다고 본 것이다.

근거로는 안기부의 차명계좌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 YS가 취임하던 93년 한 해 동안 잔액이 1293억원이나 갑자기 불어난 점을 들었다. "외부 자금 유입 없이 안기부 예산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 사실조회는 1심에서는 실시하지 않았다.

강씨가 당시 실제로 청와대를 수시로 방문했던 점도 변호인을 통해 입증됐다. 재판부는 또 강씨의 진술을 받아들일 경우 안기부에서 돈이 빠져 신한국당으로 흘러들어가기까지 왜 시간이 걸렸는지 등 그동안 석연치 않았던 부분이 명쾌하게 풀린다고 지적했다.

"독자적인 판단으로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는 김씨의 주장은 오히려 YS 개입설에 신빙성을 더한 것으로 법원은 해석했다. 재판부는 "손이 한 일을 머리는 몰랐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한편 강씨의 변호인단은 법원이 지난 5월 받아들인 한나라당 전국 9개 시.도지부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에 대해 곧 이의신청을 할 방침이다. 국가가 한나라당과 강삼재.김기섭 두 피고인을 상대로 낸 940억원의 국고 환수소송도 대법원 판결까지 진행되지 않을 전망이다.

◇곤혹스러운 검찰=차동민 대검 수사기획관은 무죄 판결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일단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 전까지는 당장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거나 YS를 조사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2000~2001년 당시 수사를 맡았던 박용석 대구고검 검사는 "법원이 외부 자금으로 판단한 돈은 사실조회를 하지 않은 다른 안기부 계좌에서 들어온 예산일 수 있는데도 바로 외부 자금으로 인정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검찰의 무리한 수사 때문에 현재 검찰만 곤혹스럽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현경.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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