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위기 사전경고 했어야"…유럽최대 신용평가기관 IBCA '자아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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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럽 최대의 신용평가기관 피치IBCA가 13일 한국 및 아시아에 대한 그간의 신용도 평가방식이 잘못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피치IBCA는 이날 '아시아 위기 이후 몇가지 교훈' 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IBCA를 포함한 신용평가기관들은 아시아 경제의 위험을 사전에 경고하는데 실패했다" 고 스스로 잘못을 시인, 주목을 끌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까지 스웨덴.이탈리아와 같은 수준이던 한국의 신용이 순식간에 정크본드까지 떨어진 것은 신용평가 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 이라며 "상황이 악화돼 등급을 하향할 수는 있지만 그같은 갑작스런 변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 말했다.

자기 반성적인 이 보고서는 우선 그동안 한국과 아시아에 대한 신용평가에서 높은 비중의 단기외채를 중시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록 한국과 같이 공공부문의 외채가 적더라도 단기외채의 비중이 높을 경우 위기상황에 취약함이 드러나므로 과거 신용도 평가에서 이 문제를 반영했어야 한다는 것. 두번째로 이 보고서는 그동안 민간부문의 외채가 많더라도 공공부문의 외채가 적은 국가가 신용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것도 잘못됐다고 밝혔다.

셋째로 각국의 정책과 기본 자료의 투명성이 신용평가에 중요한 부분으로 전체 외채액.상환기간.채무자.채권자.지급보증에 대한 자료가 제대로 제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치IBCA는 이같은 비판들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무디스 같은 세계적 평가기관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고 지적하고, 특히 국제통화기금 (IMF) 이 그동안 아시아 위기를 예측하고 해결하면서 취해온 정책들에서도 이같은 문제들이 간과됐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각 신용평가회사들이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에 대해 서너차례에 걸쳐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는 과정에서 한 회사가 등급을 내리면 하루이틀 사이에 다른 회사도 같이 등급을 내리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피치IBCA의 보고서는 이상의 문제를 간과해 한국 등 아시아 경제의 위기를 사전에 경고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라고 밝혔지만 현재 한국 등에 대한 평가가 잘못됐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피치IBCA는 지난해 영국의 IBCA와 미국의 피치투자서비스사가 합병해 탄생한 회사로 S&P.무디스와 더불어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으로 꼽힌다.

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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