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구하기 별 따기” 멕시코 흉흉한 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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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도는 멕시코
미국행 검문소 심사 엄격
주민들 “국경 폐쇄될라” 걱정
축구 등 단체행사 잇단 취소

멕시코는 27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와 멕시코 티후아나를 잇는 국경 검문소인 샌이시드로.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국경 검문소 중 하나인 이곳에는 평소와 달리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돼지 인플루엔자가 멕시코를 휩쓸어 150명 넘게 사망하고 미국에서도 50명의 감염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경을 통과하는 여행객들에게는 평소와 달리 엄격한 검문이 실시됐다. 기침이나 고열 등 독감 증세를 보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돼지 인플루엔자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인근 국경 검문소인 오타이메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부 여행객은 “까다로운 검문으로 인해 국경 통과 시간이 길어졌다”고 불평을 털어놓았지만 통과객을 지켜보는 검문소 직원들의 눈길은 매서웠다.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북쪽으로 약 3200㎞ 떨어진 티후아나공항의 분위기도 삼엄했다. 공항 직원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길거리에서 만난 주민 대부분도 마스크를 쓴 채 굳은 표정이었다. 티후아나 지역에선 “마스크를 구입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소문마저 나돌았다.

돼지 인플루엔자 사태로 인해 멕시코·미국·온두라스·코스타리카 등이 참가해 티후아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7세 이하(U-17) 월드컵 최종 예선전도 무기한 연기됐다. 북중미축구연맹은 “선수들과 축구 팬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현지 주민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미국과의 국경이 폐쇄될까 우려하고 있다. 국경이 폐쇄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멕시코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멕시코와의 국경을 일시 폐쇄한 적이 있다.

티후아나에 진출해 있는 삼성전자 멕시코 생산법인과 현대 트랜스리드 현지 생산법인 등 한국 기업들도 돼지 인플루엔자의 확산 추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SDI 멕시코 생산 법인의 김현수 차장은 “돼지 인플루엔자 사태가 발생한 이후 모든 단체 행사를 취소하고, 직원들에 대한 위생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마스크를 대량 구입해 나눠줬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 지사=주영성 기자 yhchang@koreadaily.com

차분한 대응 뉴욕
학생 28명 감염 1곳만 휴교
시당국 발빠른 대응에 평온
“신경 쓰여도 위협 못 느껴”

뉴욕은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퀸스를 관통하는 495번 고속도로변의 세인트프랜시스고교.

돼지 인플루엔자가 집단 발병한 이곳은 27일부터 이틀간 휴교조치가 내려진 때문인지 주변은 지극히 평온했다. 3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지만 학교 건물 어디에도 출입통제 표시가 없었다. 단지 교문 입구에 ‘이틀간 휴교한다’는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있을 뿐이었다.

오후가 되자 교장인 레오널드 콘웨이 신부가 취재진 앞에 나타나 상황을 브리핑했다. 그는 “24일부터 책상과 의자 등 모든 집기를 살균제로 소독했다”며 “학교 측은 뉴욕시 보건위생국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학교는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몸상태를 확인해 e-메일로 수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추가 환자 발생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뉴욕 시 당국에 따르면 이 학교의 돼지 인플루엔자 감염자 수는 당초 8명에서 하루 만에 28명으로 급증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이 지역 출신 하원의원과 시 보건 당국자들은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보건 당국자는 기자회견을 열고 “멕시코와 달리 현 상황은 전혀 심각하지 않다. 시민들이 느끼는 공포가 오히려 문제”라며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이런 노력이 주효했는지 학생들과 주변 시민들은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이 학교 11학년생(고2) 매튜 맥건하임은 “친구 한 명도 돼지 인플루엔자에 걸렸지만 별로 무섭지 않다”며 “일반 독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 주민 제이시 리는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쉽게 감염되지 않는다는 보도를 접했다. 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세인트프랜시스고교와 붙어 있는 PS 179 초등학교는 이날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 학교의 학생들이 거리낌없이 운동장에서 뛰노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한식당 코리아 팰리스의 종업원은 “돼지 인플루엔자가 발생했지만 돼지고기 요리 판매량이 평소와 다름없다”고 전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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