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도 일감 끊겨 업종다각화로 활로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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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날이 갈수록 자리 보전이 버거워진다고 느끼는 직장인이라면 분명 다음과 같이 중얼거려봤을 것이다.

“아, 나도 이참에 프리랜서 선언하고 혼자 뛰어봐?” 해고의 공포나 상사.하급자와의 갈등 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며 버는 만큼 챙길 수 있으니 프리랜서란 '직업' 은 매력적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들은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춥다는데….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 이용석씨. 외국서 유학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다 적응이 안돼 95년 독립했다.

인테리어.CI (기업이미지통합).편집디자인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한다.

특히 아파트 외벽 그림 디자인으로 한동안 수입도 쏠쏠했단다.

“지난해 후반 이후로는 일이 들어오지 않아요. 건설 경기가 바닥이기 때문이겠죠. 요즘엔 이미지 합성이나 원판작업 같은 단순작업도 마다하지 않아요. ” 94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진가 이상엽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시사잡지나 사회단체의 홍보용 책자등에 사진과 글을 기고해온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원고청탁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한숨을 쉰다.

“올해는 큰일 났어요. 여기저기에 타진해봤는데 제 사진을 써줄 곳이 거의 없더군요. 잡지쪽이 원래 경기에 민감하거든요. ” 경제활동이 저조하니 이벤트행사도 줄어들게 마련. 자연히 '이벤트의 꽃' 이라는 내레이터 모델계도 썰렁하다.

'도우미 아카데미' 의 이지선씨는 “예년 같으면 아파트 모델하우스 안내나 스키 관련 행사가 많았는데 요샌 거의 없어요. 주위에서 안부를 물어오면 '겨울잠 잔다' 고 말해요. ” 사정이 이러니 프리랜서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살 길을 찾고 있다.

카피라이터 맹명관씨의 이야기. “요즘처럼 어려울 때는 한 분야에만 매달릴 수 없습니다.

제가 광고업 뿐 아니라 컨설팅이나 마케팅 분야를 개척해온 것도 그런 이유죠. ” 맹씨는 방송이나 도서기획에도 손을 대고 있다.

프리랜서도 '사업다각화' 를 해야 경쟁력을 갖는다는 얘기다.

철저한 기획력도 현 상황을 돌파하는 무기. '프리랜서의 세계로 오라' 란 책을 쓴 출판프로듀서 김기태씨는 “이전에는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있어도 출판기획 의뢰나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정교한 기획안을 만들어 출판사등을 찾아다니며 섭외를 해야 살아갈 수 있다” 고 말한다.

오히려 느긋한 자세를 보이는 프리랜서들도 있다.

“지금의 위기는 동시에 기회라고 생각해요. ” 자유기고가 이성수씨의 말이다.

“혼자 힘으로 밑바닥에서부터 헤쳐나가야 하므로 경쟁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황이 좋아지면 이전보다 큰 능력을 발휘할 거란 얘기죠.” 다른 프리랜서들도 '적게 쓰고 열심히 일하면 된다' 는 식의 낙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미국의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우는 “21세기에는 정기적인 승진과 연봉 상승이 보장되는 평생직장의 신화가 깨진다.

이제 자신의 평생직업을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유난히 추운 이 겨울에도 프리랜서들이 'IMF=I am a Freelancer ' 라고 여유부릴 수 있는 건 그들 스스로가 '미래형 인간' 을 자부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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