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미국 정부·의회 인사 식탁에 올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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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음식과 술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곁들이면 더 기억에 남을 거에요.” “코스가 너무 많아지니까 잡채와 전을 한 접시에 어우러지게 담으면 어떨까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 같은 맛을 낼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서울 청담동의 한식당 ‘우리가’에 2월부터 이달 초까지 매주 한식세계화에 관심이 많은 여러 사람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국제교류재단의 임성준(60·사진) 이사장 부부가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이사장과 그의 남편인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총지배인 디디에 벨투아즈 등과 자리를 함께했다. 임성준 이사장이 5월 초 미국 워싱턴DC에서 주최할 만찬을 위한 예행연습 자리다.

‘우리가’의 안정현 사장은 분주히 요리를 점검했고 참석자들의 의견을 메모했다.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폴 솅크 주방이사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가 참석한다고 해도 대접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요리”라고 칭찬하자 임 이사장은 비로소 안도하는 눈치였다.

워싱턴 행사엔 ‘우리가’의 자랑인 삼색밀쌈부터 랍스터 잡채, 비빔밥 등이 오를 예정이다. 수많은 예행연습과 메뉴 조정을 거쳐 디저트까지 포함한 코스를 확정했다. 미슐랭 가이드 별 셋을 받은 세계적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가 칭찬했던 요리들이 중심이다. <본지 2월 14일자 5면>

임성준 이사장은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미 의회 의원을 합쳐 100여 명을 초대해 현지시간으로 5월7일 워싱턴DC의 윌라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한식 만찬행사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앞서 5월5일에는 미국의 유명 요리사와 요리평론가들을 초청한 오찬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교 전문 단체인 만큼 현지 유력인사와 관련업계 종사자로 대상을 명확히 했다고 한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고 연설에서도 한국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식 세계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싶습니다.”


이번 워싱턴DC 행사를 ‘한식 세계화 전격대작전’이라고 부르는 임 이사장은 “18년 동안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외교에서 음식문화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며 행사를 마련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어느 지역을 가도 일본대사관에서 하는 오찬·만찬 행사는 균일하게 훌륭했다고 기억합니다. 음식이 국력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이죠. 1990년대 후반 주이집트 한국대사로 재임할 당시 슬로베니아 신임 대사가 각국 대사를 초대해서 자국 요리와 와인을 대접한 적이 있어요. 정성껏 준비한 음식에 정교한 서비스까지, 슬로베니아에 대한 인상이 단박에 좋아지더군요.”

그래서 한식을 대한민국의 문화와 국격을 알리는 도구로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식의 국제적인 홍보를 위해선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한식을 대접할 일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어요.”

임 이사장은 “2007년 2월 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부터 한식세계화를 위한 현지 행사를 오랫동안 구상해왔다”고 말했다. “식기 디자인부터 서빙하는 스태프들 교육까지 철저히 했습니다. 한식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의를 기울였어요. 코스 요리의 마무리 포인트인 디저트를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아이스크림으로 내면서 한국의 풍미를 살린 생강 맛으로 준비한 게 하나의 예입니다.”

전통주는 인삼주·산사춘으로 정했다. “산사춘의 원료인 산사는 영어로 ‘메이플라워’인데 미국에 처음 도착한 청교도들이 타고 온 배의 이름이 ‘메이플라워 호’라서 의미가 있어요. 모세의 지팡이나 『해리포터』시리즈 속 마법지팡이가 산사나무로 만든 것으로 묘사됐어요. 무작정 ‘맛있으니까 일단 드셔보시라’가 아니라, 흥미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야지요.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이처럼 정부와 민간의 주도면밀한 전략 마련이 필수적입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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