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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회주의를 퍼뜨리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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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최근 여론조사 기관 라스무센은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30세 이하 미국인 중 37%가 자본주의를 선호한다고 답했지만 사회주의가 좋다고 응답한 사람도 33%나 됐다는 것이다. 30%는 어느 쪽이 나은지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전체 미국인 중에선 53%가 자본주의를, 20%가 사회주의를 지지했고, 27%는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미국 역사를 아무리 살펴봐도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도가 이렇게 높았던 적이 없다. 사회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912년에도 사회당 대통령 후보 유진 뎁스는 6% 득표율에 그쳤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엔 탄탄한 사회주의 조직들이 있었지만 오늘날 미국엔 제대로 된 사회주의 조직이 없다.

그렇다면 라스무센의 조사 결과는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일까. 나는 하나의 추론이 가능하다고 본다. 지난 일 년 동안 세계를 혼란에 빠뜨려 놓고도 자신을 구제해 달라고 납세자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월가의 혼란상이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갉아먹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는 사회주의와 반미주의의 상관관계가 약화됐다는 사실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거의 연관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옛 소련의 붕괴로 미국은 더 이상 사회주의자의 주적이 아니다. 유일하게 남은 강력한 공산국가인 중국조차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택했다. 오늘날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며, 이들은 사회주의와도 전쟁을 불사하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사회주의 세력은 미국의 가장 밀접한 동맹인 서유럽 국가들의 집권당 또는 최대 야당인 사회민주주의 정당뿐이다.

소련의 몰락은 확실히 세대 간에 분명한 입장 차를 만들었다. 30대는 20대에 비해 훨씬 사회주의에 비우호적이다. 그러나 30대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그 윗대에 비해 확실히 냉정하다. 사회주의를 택한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대공황기에 사회주의 선구자들이 으레 주장했던 혁명적 변화(예컨대 임금노동의 폐지)를 지금 사회주의자는 더 이상 추구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오늘날 사회주의자와 사회민주 정당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색채를 좀 더 가미한 자본주의를 원할 뿐이다. 자본에 대한 밀착된 감시, 노동자 권한의 강화는 물론 전 국민 건강보험처럼 민간 부문이 할 수 없는 공공 부문의 확대가 그런 예다. 여기서 우리는 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미국 자유주의 사이에 적지 않은 공통분모를 발견하게 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월가를 비난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회주의에 대해 뭘 알겠는가. 오히려 오늘날 미국에서 사회주의를 가장 열심히 떠들고 있는 세력은 따로 있다. 선동적인 우파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논객인 러시 림보, 션 해너티, 글렌 벡 및 그 추종자들이다. 그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사회주의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보수 논객 벤저민 샬린도 가세했다. 그는 ‘데일리 비스트’라는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미국에선 대중적 지지를 얻은 적이 없는 사상을 현재 전 국민의 60%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대통령이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림보와 그의 추종자들이야말로 뎁스와 그의 동지들이 실패했던 과업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월가와 미국에 사회주의를 퍼뜨리는 일 말이다.

해럴드 마이어슨 워싱턴 포스트(WP) 칼럼니스트
정리=정경민 기자, [워싱턴 포스트=본사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