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외국인 지분 많은 상장사들 경영간섭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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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다음달 시작되는 12월 결산법인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상당수 대기업 경영진들에 전에 없던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올들어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종전의 두배 이상인 55%로 확대된 뒤 SK텔레콤.삼성전자 등 일부 우량대기업을 중심으로 외국인 지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오는 주총때 이들이 해당기업의 경영사안에 시시콜콜 참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것이다.

기업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기업사냥' 위협은 차후 문제로 치더라도 당장 외국인 투자가들이 까다로운 시어머니처럼 이것저것 경영개선 요구를 해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예전 주총은 '총회꾼' 의 성가신 돌출행동만 무마하고 나면 자기편 주주와 회사 임직원들이 진을 친 회의장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게 보통이었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질지 모르게 됐다.

IMF가 돈을 대준 한국경제 전반에 사사건건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듯이 벌써부터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은 상당수 지분을 사모은 기업에 대해 주주로서의 강도높은 관심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 8일 한국전력이 개최한 외국계 금융기관 대상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전반적으로 투자규모가 너무 큰 게 아니냐” “국내 전력요금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싸다” 는 등 경영수지와 관련된 의견개진을 서슴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기업 인수.합병 (M&A) 중개기관인 코미트M&A 윤현수 사장은 “외국인 1인당 지분한도가 10%로 제한된 상황에서 국내기업에 대한 이들의 적대적 M&A 시도가 당장 출현하긴 이르다.

하지만 우선 막대한 지분을 배경으로 해당 기업의 경영개선에 나설 공산은 크다” 고 전망했다.

9일 현재 주택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이미 40%를 넘어섰고 국내 블루칩 (핵심 우량주) 의 간판격인 SK텔레콤.삼성전자도 모두 30%를 웃돌기 시작했다.

국민기업 포항제철과 신한은행.현대자동차도 외국인들이 20%가 넘는 지분을 사모았다. 구미의 경우 소액주주들을 대변하는 기관투자가들이 해당 기업의 경영계획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최고경영진을 갈아치우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진다.

지난해 미국 애플컴퓨터의 최고경영자가 대주주인 연.기금펀드의 압력에 못이겨 사임한 것과 같은 일이 당장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긴 힘들다 하더라도 국내기업들은 앞으로 외국인들의 조직적인 유.무형 압력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현실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실력행사 수단으로▶회계장부 열람▶실적부진 경영진 퇴진 및 새 이사 선임▶계열사 정리 등 구조조정▶최저배당한도 등에 대한 요구를 꼽고 있다.

이에 따라 무리한 신규 투자전략이 외국인 주주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강창희 대우증권 상무는 “원칙을 중시하는 외국인들의 경영참여가 국내기업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순기능도 있다고 본다” 고 말했다.

하지만 주가상승을 통한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경영원칙을 도외시하고 외형 부풀리기에 주력했던 국내대기업들이 외국인들의 적극적 간섭에 부닥칠 경우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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