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사무실 늘어나도 임대료는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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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반적으로 빈 사무실이 늘면 임대료(보증금과 월세)는 내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 서울 지역 대형 오피스시장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공실률(빈 사무실 비율)은 증가하지만 임대료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부동산투자자문회사인 저스트알이 서울의 대형 빌딩(연면적 6000㎡ 이상 또는 10층 이상) 532곳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오피스 공실률은 2.3%로 지난해 4분기보다 0.87%포인트 올랐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세빌스코리아가 최근 서울 소재 81개 주요 빌딩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올 1분기 공실률이 2.2%로 지난해 4분기(1.0%)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서울 대형 오피스 공실률이 2%대로 진입한 것은 2007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대형 빌딩 사무실을 떠나는 기업(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저스트알 김우희 상무는 “구조조정에 나선 입주 기업들이 경비 절감을 위해 사무실 면적을 줄이거나 임차료가 싼 서울 외곽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실제 강남 도산대로변에 있던 정보통신기술 업체 E사는 금천구 가산동으로 최근 사무실을 옮겼다. 빈 사무실 증가는 국내외 보험사들의 영업조직 축소와 증권사 지점 통폐합도 한몫한다. 이 때문에 임대료가 비싼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공실률이 높아졌다. 강남권의 공실률이 전 분기보다 1.14%포인트 오른 2.6%로 가장 높았고 여의도·마포권(2.49%)과 도심권(2.06%) 순으로 빈 사무실이 늘었다.


이상한 현상은 이런 상황인데도 대형 빌딩의 임대료가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 1분기 평균 환산 전셋값(보증금·월세 등을 전세로 환산한 금액)은 3.3㎡당 543만원(저스트알 조사)으로 석 달 새 5만3000원 정도 올랐다. 강남권의 경우 3.3㎡당 526만6139만원으로 전 분기 대비 3.14% 뛰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좋은 시설을 갖춰 공실이 적은 일부 특급 빌딩의 건물주들이 물가 및 관리비 상승 등을 이유로 임대료를 올리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공실률이 늘기는 했지만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어서 관행적으로 매년 임대료를 올리는 건물주도 많다.

특히 강남파이낸스 빌딩 등 임대시장에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특급 건물은 공실이 생기더라도 임대료를 잘 낮추지 않는다. 신영에셋 홍순만 상무는 “초대형 빌딩은 임대료로 빌딩의 가치가 평가되기 때문에 임차 계약 기간이 끝나면 경기에 상관없이 임대료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이들은 최근 몇 년 새 서울에서 새 빌딩 공급이 적었던 만큼 장기적으로 공실이 줄고 임대료는 더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신영에셋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역 대형 빌딩(지상 10층 이상, 연면적 1만㎡ 이상) 공급 면적은 76만㎡로 2007년(158만㎡)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사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빈 사무실이 더 늘어나면 임대료를 더 낮춰 임차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남권 일부 소형 빌딩은 벌써 임대료를 내려 임차인 모집에 나서고 있어 3분기에는 임대료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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