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파리 그려 넣은 소변기가 깨끗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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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넛지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리더스북
428쪽, 1만5500원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기술. 넛지(Nudge)다. 사전적 의미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지만, 저자들은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정의한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그려진 파리. 소변기를 사용하는 이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파리를 맞추거나 안 맞추거나.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파리를 겨냥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 암스테르담 공항은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다.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라는 경고나, 파리를 맞추면 경품을 주는 식의 인센티브도 일체 없었다. 강제하지 않고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부드러운 힘, 넛지가 제대로 작동한 예다.

넛지는 부하 직원을 기분 좋게 부리고, 학생들이 채소를 더 많이 먹게 하고, 시민들의 투표율을 높이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대신 제대로 작동하려면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어야 한다. 예컨대 사람들은 돈을 잃었을 때 상실감을 돈을 벌었을 때의 만족감보다 훨씬 크게 느낀다는 것 따위다. 주식투자로 1만 원을 번 사람의 만족감은 5000원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보다 작다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당신이 에너지를 절약하면 연간 350달러를 벌 수 있다’에서 ‘당신이 에너지 절약을 안하면 연간 350달러를 잃게 된다’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후자가 훨씬 강력한 메시지며, 절약 효과도 크다.

넛지는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를 알게 해준다. 갈등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방법도 제시한다. 반면 인간의 선택권을 극단적으로 제한한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정책 입안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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