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울리려고 … ISU, 채점 규정 바꾼 데 이어 심판 수까지 줄일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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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빙상경기연맹(ISU)의 요즘 행태가 미심쩍다.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피겨스케이팅 판정에 노골적으로 간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기 중 실수하더라도 고난도 점프를 구사하는 선수에게 유리하도록 채점 규정을 바꾼 데 이어 심판 수 축소까지 밀어붙일 기세다.

캐나다 일간지인 ‘글로브앤메일’은 21일(한국시간) “ISU 이사회가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심판 수를 12명에서 9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이 모든 절차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국제심판인 이지희 대한빙상경기연맹 피겨 부회장은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대회 때부터 (심판 수 축소) 논의가 진행됐다. ISU 임원 대부분과 테크니컬 패널이 반대했지만 친콴타(이탈리아) 회장이 속한 이사회가 밀어붙이고 있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심판 수 축소도 아사다 마오 구하기(?)=이렇게 될 경우 심판 한 명이 메달 색깔을 좌우할 수도 있어 심판 배정에서 불리한 한국으로서는 치명적인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빙상계의 한 인사는 “김연아(19·고려대·사진)에게 결코 유리할 수 없는 조치들이다. 일본 쪽에서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ISU 수뇌부의 이런 움직임 뒤에는 최대 재정적 후원자인 일본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세계선수권에서 보듯 아사다 마오를 비롯한 일본 선수들이 내년 2월 겨울올림픽에서 정상적인 실력으로 김연아를 넘어서기 어렵다고 판단해 자국 선수들에게 유리하도록 규정 개정을 유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ISU가 심판 수를 줄이려는 표면적인 이유는 ‘경비 절감’이다. 이 부회장은 “이사회는 ISU가 현재의 채점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시스템 및 하드웨어 개발비, 심판 교육 및 세미나 등으로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에 심판 수를 줄여 이를 충당하겠다는 주장”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올림픽 심판진 운영비용(항공료·숙식비·일당)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원하기 때문에 ISU의 변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심판 한 명이 순위를 뒤바꿀 수도=‘글로브앤메일’은 “심판 수 축소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는 12명의 채점 가운데 최고점, 최저점 및 무작위로 고른 2개의 점수를 뺀 나머지 8개의 점수를 평균해 매긴다. 그런데 심판이 9명이 될 경우 표본이 5개로 줄어들기 때문에 심판 1명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심판 1명으로도 점수, 더 나아가 순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심판 수 축소로 한국 심판이 올림픽 심판을 맡을 여지도 좁아졌다. 올림픽 심판은 8월께 참가 선수국 심판 중 ‘추첨’으로 뽑는다. 한국의 국제심판은 이 부회장 등 2명인 반면, 일본은 10여 명이나 된다. 원래부터 뽑힐 확률이 낮았는데 심판 수 축소로 더욱 뽑히기 어려울 전망이다.

심판 수 축소는 올림픽 주최국 캐나다를 비롯해 세계 피겨계로부터도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태다. 미국과 캐나다빙상연맹은 최근 ISU 이사회에 우려의 목소리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ISU 이사회가 올림픽에서 누군가를 밀기 위해 심판 수 축소를 강행한다’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익명의 한 국제심판은 ‘글로브앤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친콴타 ISU 회장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화를 부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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