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통령은 세번 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란 빼어나게 비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면 그 이전의 비범한 기록들은 국정수행 능력면에서 재검증을 받는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

여기서 실패하면 그 전에 쌓아올린 비범한 업적마저 송두리째 무너진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대다수는 차라리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인생을 더 명예롭게 마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제2의 인생에서 실패함으로써 국가와 민족, 그리고 자신의 후손들에게까지 불행한 유산을 남긴 비극의 주인공들이 됐다.

어려운 시기에 국정을 책임져야 할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가 제2의 삶에서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라는 국민들은 몇 가지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게 이끌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 이끌지 못하는 지도자에게 협력하는 국민이란 없었다.

지도자가 설득력이 있으면 쉽게 따르지만 설득력을 잃게 되면 금방 화를 내고 등을 돌려버린다.

이 점은 성숙한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거시경제학자로 경제관료를 지낸 케인스는 대중이라 불리는 집단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도자가 설득력을 갖추면 잘 따라오기 때문에 문제시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둘째로 오늘날의 이른바 '열린 사회' 의 성격에 민감해야 한다.

김현철 (金賢哲) 씨 사건의 경우에서와 같이 과거 폐쇄사회에서는 흑막에 가려버릴 일도 금방 드러난다.

YS처럼 오랫동안 민주화투쟁을 한 인물들도 권위주의와 싸우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권위주의적 체질에 젖어버리는 수가 많다.

열린 사회가 찾아와도 사고방식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희생당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정부 안에서보다 밖에서 더 많은 지혜를 구해야 한다.

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가 국가이익보다 권력적 이익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 지혜의 공급원으로서 충분하지도, 적절하지도 않은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도 이런 이유에 상당부분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경쟁전략에서도 오늘날은 경영에 필요한 두뇌를 기업내에서 조달하기보다 외부에 의존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널따란 모래밭에서 어렵게 찾아낸 한두개의 진주 같은 유용한 아이디어들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정부기구는 대폭 축소하되 민간부문으로부터의 아이디어 공급 채널은 최대한 넓혀야 할 것이다.

넷째로 정치적 급진주의.모험주의.상징주의 등에 내포된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YS정부가 시도한 신한국 건설.세계화.실명제.역사 바로세우기 등이 발상 자체는 무방했으나 실제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합리적.실용적 토대들이 취약해 실속보다 부작용을 더 많이 초래했다.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케네디도 미국을 월남전에 몰아넣고 고 딘 디엠 대통령의 암살계획을 직접 승인하는 등 모험주의가 국가의 불행을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저명한 사회사상가 촘스키는 케네디를 미국 역사상 '가장 위험한 최악의 대통령' 으로 평할 정도다.

다섯째로 통합의 정치문화 형성이 시급하다.

DJP 공동정권의 협력체제가 국민화합과 정치안정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권내 파벌간 권력투쟁으로 정치적 불안정이 야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협력체제가 잘되면 한국정치사상 처음으로 정파통합의 정치문화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 문제를 푸는 가장 강력한 해법은 공동정권 협상에서 상호 협의된 사항들을 지키는 것이다.

金당선자도 지적했듯이 개헌 여부는 국민들이 결정할 사항이다.

또 신뢰의 토대가 구축된 통합의 정치문화만 형성된다면 어떤 정부형태라도 잘 기능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임기를 잘 마치고 국민들 속으로 돌아왔을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존경받는 대통령을 갖고 싶어 한다.

50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에 성공한 金당선자가 또다시 헌정사상 처음으로 퇴임후 국민의 사랑 속에서 제3의 인생을 시작하는 대통령으로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안영섭<명지대 정치학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