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사 임원으로 재직하다가 지난 9월 퇴직한 李모 (56.서울서대문구홍은동) 씨는 요즘 우편함 열어보기가 두렵다.
쌓이는 청첩장 때문이다.
부고소식도 최소한 1주일에 한번은 들려온다.
연락 못받은척 모른체하고 지나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고, 또 체면상 5만원 이하의 봉투를 건네기가 쑥스럽다.
그러다 보니 경조사비로 나가는 돈이 한달에 적어도 40만~50만원. 퇴직금 까먹고 지내는 처지에서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
D사에 근무하는 金모 (29.서울종로구창신동) 씨는 "요즘은 친구나 직장동료의 결혼소식이 들려오면 축하하는 마음보다 부담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고 토로했다.
늘어나는 부담을 견디다 못해 강구해낸 방안이 직장 행사의 경우 동료들과 공동으로 축.부의금을 내는 것. 10여명이 1만~2만원씩 모아서 내면 각자 부담은 줄면서도 모양은 낫다.
경조사의 축.부의금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대부분에게 '고지서 아닌 고지서' 가 됐다.
최근에는 청첩장에 온라인 계좌번호를 적어보내는 웃지못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 과다한 경조사 비용에서 비롯됐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조사에 따르면 성인 1인당 연평균 24회의 결혼식에 참석해 85만2천원씩을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대상자중 대부분 (94.7%) 이 '과도한 축의금으로 경제적 부담이 크다' 고 대답했다.
소보원 황정선 (黃正善) 팀장은 "결혼식 비용만도 연간 2조2천5백억원으로 추정되며 장례등까지 합치면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 면서 "이러다 보니 조금만 안면이 있는 사람에까지 청첩장을 보내는 일이 발생한다" 고 지적했다.
동국대 김익기 (金益基.사회학)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시급히 제거해야할 거품중 하나가 과다한 경조사비" 라면서 "사회 지도층 인사부터 체면치레 행사를 줄여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 동작구청.충남 금산군청등은 지난 4월부터 직급별로 1만~3만원씩 부조금 상한선을 정했으며 서울시도 최근 직원대상 설문결과를 거쳐 국장급 3만원, 과장급 이하 2만원으로 경조사비를 통일하는 등 경조사비 거품빼기에 나서고 있다.
주정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