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이것만은 고치자]10. 과도한 경조사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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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K사 임원으로 재직하다가 지난 9월 퇴직한 李모 (56.서울서대문구홍은동) 씨는 요즘 우편함 열어보기가 두렵다.

쌓이는 청첩장 때문이다.

부고소식도 최소한 1주일에 한번은 들려온다.

연락 못받은척 모른체하고 지나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고, 또 체면상 5만원 이하의 봉투를 건네기가 쑥스럽다.

그러다 보니 경조사비로 나가는 돈이 한달에 적어도 40만~50만원. 퇴직금 까먹고 지내는 처지에서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

D사에 근무하는 金모 (29.서울종로구창신동) 씨는 "요즘은 친구나 직장동료의 결혼소식이 들려오면 축하하는 마음보다 부담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고 토로했다.

늘어나는 부담을 견디다 못해 강구해낸 방안이 직장 행사의 경우 동료들과 공동으로 축.부의금을 내는 것. 10여명이 1만~2만원씩 모아서 내면 각자 부담은 줄면서도 모양은 낫다.

경조사의 축.부의금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대부분에게 '고지서 아닌 고지서' 가 됐다.

최근에는 청첩장에 온라인 계좌번호를 적어보내는 웃지못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 과다한 경조사 비용에서 비롯됐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조사에 따르면 성인 1인당 연평균 24회의 결혼식에 참석해 85만2천원씩을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대상자중 대부분 (94.7%) 이 '과도한 축의금으로 경제적 부담이 크다' 고 대답했다.

소보원 황정선 (黃正善) 팀장은 "결혼식 비용만도 연간 2조2천5백억원으로 추정되며 장례등까지 합치면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 면서 "이러다 보니 조금만 안면이 있는 사람에까지 청첩장을 보내는 일이 발생한다" 고 지적했다.

동국대 김익기 (金益基.사회학)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시급히 제거해야할 거품중 하나가 과다한 경조사비" 라면서 "사회 지도층 인사부터 체면치레 행사를 줄여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 동작구청.충남 금산군청등은 지난 4월부터 직급별로 1만~3만원씩 부조금 상한선을 정했으며 서울시도 최근 직원대상 설문결과를 거쳐 국장급 3만원, 과장급 이하 2만원으로 경조사비를 통일하는 등 경조사비 거품빼기에 나서고 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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