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항해를 후원하며 부를 축적한 엔리케 왕자는 오늘날로 치면 벤처 투자가와 다름없다. 당시 장비와 항해술로 새 항로를 개척한다는 건 실패할 확률이 높았지만, 성공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었던 것이다. 안정된 정치의 길을 버리고 일생을 모험에 베팅했던 엔리케 왕자야말로 진정한 ‘벤처 정신’의 선구자라 할 만하다.
이처럼 모험을 사랑하는 자본가들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세상을 빛낸 무수한 아이디어들은 싹을 틔우지 못했을 터다. 토머스 에디슨의 백열전구도 그중 하나다. 전구가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거금 3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가 바로 미국의 전설적 금융가 존 피어폰트 모건이다. 검증된 사업을 선호했던 모건이 불확실한 벤처 투자에 나선 건 전기 기술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 덕에 매디슨가에 있던 모건의 집은 뉴욕에서 최초로 전깃불을 밝힌 주택이 됐다. 뒷마당에 발전기를 설치하는 바람에 소음과 화재가 잇따랐어도 기꺼이 참아냈을 정도였다.
경제 위기로 주춤하긴 했지만 벤처 투자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저 돈벌이가 아니라 새 세상을 여는 개척자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평범하게 사는 선례를 만들겠다”던 전임 대통령 아들 눈에도 그 일이 멋져 보였나 보다. 벤처에 관심이 많다더니 회사원 신분으로 여러 군데 거액을 투자했다 한다. 하지만 벤처 투자가라 하기엔 남세스럽다. 아버지 보고 돈 대준 물주가 따로 있으니 말이다. 대박 나면 제 차지요, 쪽박 차도 손해날 것 없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엔리케 왕자와 모건을 빛나게 한 건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재산을 아낌없이 걸었던 벤처 정신이었다. 이걸 모르고 흉내를 내느니 차라리 평범한 회사원으로 남았다면 사달은 면했지 싶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