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도 비틀거린다…주가·엔화 폭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일본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주가는 폭락하고 엔화는 맥을 못추고 있다.

금융기관.중소기업의 연쇄도산으로 위기의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일본이 제2의 한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지적에 얼마전까지 이코노미스트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1천2백조엔에 이르는 국내재원을 바탕으로 경제를 일으킨 일본은 외채위기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경제성장.금융시장등 어느것 하나 성한게 없다.

국제통화기금 (IMF) 은 최근 내년 일본경제성장률을 1.1%로 수정 전망했다.

당초 2.1%에서 반토막난 것이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0.2%로 내려잡았다.

주가.금리.환율의 움직임은 위태롭다.

연일 폭락한 닛케이 (日經) 평균주가는 22일 1만4천7백99엔40으로 마감돼 5년간 심리적 지지선으로 작용해온 1만5천엔대가 붕괴됐다.

통화당국의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엔화는 달러당 1백30엔대로 내려앉았다.

다급해진 일본정부는 긴급조치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소득세 2조엔을 특별감세하고 불량채권 해결에 10조엔의 국채를 발행키로 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의 재정개혁은 사실상 물건너갔다.

이같은 긴급조치는 시장원리나 개혁도 일단 시장을 살리고 나서야 가능하다는 절박한 인식에 따른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회복기미를 보이던 일본경제가 이처럼 꼬인 것은 정부의 판단 미스와 정책 실기 (失機) 때문으로 보고 있다.

재정개혁은 경기가 완전히 자율회복을 했다는 전제 위에서야 효과를 거둘수 있는 조치다.

그러나 지난 4월까지 "완만한 경기회복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고 판단했던 일본은행은 12월에는 "경기후퇴 기미가 분명해지고 있다" 고 물러섰다.

내년4월까지 조기시정조치의 엄격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금융기관들은 필사적으로 대출금 회수에 나섰다.

그결과 주거래은행의 자금지원이 중단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이 집중적으로 희생되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은 금융기관 대출금의 70%, 민간설비투자의 50%, 고용의 80%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자금줄이 마르면서 금융불안의 불똥이 실물경제 쪽으로 번지고 있다.

결국 일본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9월말 현재 불량채권은 28조7백80억엔으로 3월말에 비해 오히려 1천7백80억엔, 6.4%가 증가했다.

금융체질 개선을 앞세우다 불량채권 액수만 늘인 셈이다.

현재 일본은 미국의 지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달러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은행이 독자적으로 시장개입하기에는 힘에 부친 상황이다.

일본은행은 미국의 협조개입이 없이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판단 아래 22일부터는 시장개입을 중지해 버렸다.

하지만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은 달러강세 노선을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신 일본에 "긴축재정을 포기하고 확대재정으로 전환해 내수확대 위주의 경기부양에 나서라" 고 거듭 권고하고 있다.

일본의 조기시정조치 완화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해결하는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