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국가부도 눈앞에…이젠 시간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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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람말고는 별 자원이 없는 나라의 국가 부도는 중남미 국가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몸뚱이 하나 갖고 추운 겨울 거리에 나앉는 것에 진배없다.

아직도 '설마'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산 (誤算) 이다.

15대 대선을 전후해 한국이 하루하루, 아니 시시각각 가고 있는 상황은 바로 국가 부도의 벼랑 끝이다.

지난 몇달간 국제사회가 한국에 보낸 메시지는 명확하다.

피눈물이 나더라도 '부실 (不實)' 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라는 것이다.

지난 18일 "정부가 보증을 설테니 은행은 외국 빚을 얻어오라" 고 한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의 발언이 닷새만에 국가 신용등급을 네단계나 다시 떨어뜨린 결과를 빚은 것은 우리가 이런 메시지를 아직도 잘못 읽고 있다는 증거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절연 (絶緣) 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바로 잘못 쓰인 '돈' 과 '인력 (人力)' 과의 절연이다.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이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만 서면 한국에 대한 투자는 재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들을 확신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금융 부실과의 절연은 그 첫번째다.

기업 부실은 결국 금융부실이고, 따라서 한국은 금융 부실과 어떻게 절연할 것인지를 명확히, 그것도 아주 시급히 보여주어야 한다.

내놓고 말해 제일은행이나 서울은행의 경우 이들을 부도냈다가는 흑자도산하는 기업이 워낙 많을테니 ▶이들 은행의 부실채권은 정부가 안되▶건실한 채권은 다른 금융기관이 인수토록 하고▶이를 위해 금융기관간 채권 인수제도를 언제까지 마련한다는 구체적 계획을 짜며▶채권을 사가는 은행이 국제결제은행 (BIS) 의 기준을 맞출 수 있도록 고금리 예금을 받든, 외국은행의 지분 참여를 끌어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빨리 마련해 제시해야 한다.

은행을 외국에 통째로 팔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좋은 방법이 없다.

그러나 당장 나설 외국은행이 있을 리 없는 마당에 정부는 더이상 은행 매각에 대한 이런 저런 조건을 붙이지 말고 필요하면 외국은행을 상대로 한 협상에 직접 나서야 한다.

예컨대 씨티은행이 제일은행을 사려고만 한다면 제일은행의 상황은 나아질 것이다.

둘째는 기존 노동제도와의 절연이다.

정리해고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안팎의 눈치를 보며 '토' 를 단다면 다같이 죽자는 것과 다름없다.

국회는 하루라도 빨리 노동법상의 '시행 유보' 조항을 없애야 한다.

모두 다 부도난 국가의 근로자가 되느니, 해고당하지 않고 살아 남은 사람들이 해고된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게 백번 낫다.

이런 어려운 일들을 해내려면 인사 (人事)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서울에서 거명되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측의 새로운 인물들에 대해 워싱턴이나 월가 (街) 는 "그게 누구냐" 는 반응들이다.

지금 내세워야 하는 사람은 싫건 좋건 '미국이 잘 알고, 미국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월가의 한 실력자는 최근 "YS사람은 안되고, DJ가 확실히 쓴다는 사람이 명확한 프로그램을 들고 와도 될까 말까다" 고 말했다.

정말 이젠 시간이 없다.

김수길<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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