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 몸&맘] 장애인 될 확률 10%인 태아, 엄마의 선택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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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한국에선 장애인들을 어디로 보내나? 집단 수용시설은 어디 있나?”

“대부분 가족과 함께 지낸다. 가족이 없으면 국가나 종교단체가 돌보기도 한다.”

“당신이 내게 말해주지 않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10여 년 전, 우리나라를 찾은 미국 여성과 나눴던 대화다. 당시 1년간 한국에 체류했던 그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서울의 첫 모습은 ‘장애인이 희소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달간 서울 생활을 마친 뒤엔 ‘장애인이 살 수 없는 곳’이란 생각으로 변했단다.

“버스·지하철·길거리 등 공공시설은 대부분 활기찬 건강인들 몫이니 ‘장애인은 이용하지 말라’는 묵언의 사회적 약속이 있는 거 아니냐, 그러니 장애인은 국가에서 지정한 특정 지역에서 그들만을 위한 시설을 이용하면서 살지 않을까?”란 게 그녀의 잠정적인 추론이었다. 수십 년 전부터 버스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시설이 장착돼 있는 등 일상생활에서 장애인과 더불어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그녀의 눈엔 대한민국은 장애인 차별이 심한 나라로 보였던 것이다. 세계 12~13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이면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배척이 심하고 복지시설도 미비하다. 병원에선 가족마저 장애인을 배척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우선 의학의 발전으로 태아 기형의 발견율이 높아지자 사소한 기형이라도 밝혀지면 대부분의 부모는 망설이지 않고 인공 유산을 택한다. 또 임신한 줄 모르고 이런저런 약을 복용했던 임산부 중에서도 많은 숫자가 인공 유산을 선택한다. 의사도 굳이 말리지 않는다. 아직도 현대의학이 찾지 못하는 태아 이상이 많은 상황에서 “100% 괜찮다,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약과 무관한 장애아가 태어나더라도 의사는 부모로부터 “그때 괜찮을 거라며 유산을 말리더니 이게 뭐냐”란 심한 원망과 욕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신한 아이가 지능 저하와 다양한 신체적 기형을 동반하는 ‘다운증후군’임을 알고서도 출산을 감행한 전 미국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의 선택은 우리나라에선 딴 세상 이야기다.

일전에도 주변에서 산전 검사상 태아가 ‘정신지체 가능성 10%’로 밝혀진 임산부가 곧바로 유산을 결정했다.

“괜찮을 가능성이 90%라도 유산할 건가요?”라는 의사의 권유에 그녀는 “남의 이야기라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10%의 가능성으로 장애인이 태어나면 누가, 어떻게 키우라고요”라며 단호함을 보였다.

현재 추산되는 국내 장애인은 약 225만 명이다. 이 중 선천적 장애인은 10% 정도며 90%는 출생 시 정상으로 태어났지만 살면서 사고나 질병 등 후천적 장애인이 된 사람이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평균 수명이 길어질수록 사고·질병으로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이 장애인을 위한 의료·취업·일상생활 등 복지 기능을 보장해주는 것은 유사시를 대비해 자신을 위한 보험을 드는 셈이다. 오늘,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선진 한국을 외치는 현 정부가 장애인을 위한 복지 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증액할 계획인지, 건강인의 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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