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유한수 포스코경영연구소소장…새대통령 '경제회생' 서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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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환율이 단기간에 2배로 오르고 시중금리가 30%를 넘어서는등 우리 경제는 거의 바닥까지 침몰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새 대통령이 우리 경제를 한시 바삐 회생시켜 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추락하기는 쉬워도 회복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단점중 하나는 기다리지 못하는 버릇이다.

무슨 일이든 빨리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 국민들은 밥도 빨리 먹고 술도 빨리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온갖 요구가 성급하게 쏟아질 것이 뻔하다.

일부에서는 당장 경제회생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라고 재촉할 것이다.

취임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아예 지금부터 권한을 행사하라는 주장도 있다.

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무리한 요구다.

이런 요구를 묵묵히 듣되 대통령 당선자는 절대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본다.

국민욕구를 빨리 충족시키려다 보면 당장은 속이 시원하겠지만 반드시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금리가 높다고 특단의 조치를 취해 낮추어 버리면 일단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시중자금은 즉각 지하경제로 숨어들 것이다.

대통령의 경제학은 교과서에 충실해야 후유증이 없고 최종적으로 기대했던 효과를 볼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경제학 공부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책을 읽기보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이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나 창의력이 풍부한 작가에 비유되곤 한다.

지휘자로서 또는 작가로서 대통령은 일상적 업무에 매달리기 보다 자신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게 좋을 듯 하다.

선진국의 국가원수들은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휴양지에서 보내고 있다.

새 대통령도 적어도 석 달에 한 번은 휴가를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비판하기 좋아하는 언론에서는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대통령이 한가하게 휴가나 즐기고 있느냐고 비난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런 철학없이 부지런하기만 한 대통령이 꼭 훌륭한 대통령은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대통령이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정책도 건강해질 수 있다.

대통령의 실수는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역사적 실수가 되고만다.

정서적 불안과 육체적 피로 때문에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지도자가 무수히 많다.

아무리 유능한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은 있게 마련이다.

이런 비판을 소화하거나 초월할 수 있어야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있다.

여론을 듣고 이를 잘 여과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오로지 여론의 동향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통령은 곤란하다.

여론이란게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가.

이미 선거과정에서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 대통령은 청와대 식단을 고정시키지 말고 메뉴 시스템으로 바꾸는게 좋을 것 같다.

찾아온 손님에게 칼국수만 내놓는 것은 공급자의 편리만 고려한 것이다.

수요자의 선택을 무시한 것이므로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는다.

청와대 오찬부터 고객만족을 생각해야 경제주체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유한수<포스코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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